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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Patagonia, and more

5.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 (2)


트레킹 코스의 절반 가량을 페오에 호수를 오른편에 두고 거대한 산을 왼편에 두고 움직였다. 하늘색 물빛이 정말 인상적인 호수였다. W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려면 호수를 번은 건너야 하기 때문에 관광객으로 만선을 이룬다. 나중에 들은 얘기론, 원래 페리의 운행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일정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운항을 했고, 급기야 배가 퍼져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국립공원에서 호수 횡단 노선을 위해 마련한 배가 밖에 없었다고 한다. 유일한 배가 고장이 났으니 국립공원 운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찌어찌 대체할만한 작은 배를 마련하였고, 수리가 끝날 때까지 대략 1주일 동안 작은 배로 관광객을 열심히 실어날랐다고 한다. (아니 입장료랑 뱃값이 얼만데…)


그레이 빙하의 경우, 트레킹 코스 중간쯤 빙하 전경을 감상할 있는 전망대가 있고, 끝까지 가면 빙하를 가까이서 있다. 끝까지 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서둘러 다녀왔음에도 숙소에 거의 9시가 되어서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서 해가 늦게까지 숙소 주변을 밝혀주고 있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결국 폭우가 쏟아졌는데, 엄청난 폭풍을 동반하는 터라 허접한 판초 우의가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진심 버리고 싶었다…) 이날은 프란세스 계곡과 브리타니코 전망대를 다녀오는 것이 목표였는데, 바람으로 인해 브리타니코 전망대는 폐쇄되었다. 브리타니코 전망대는 라스 토레스의 뒷모습을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국립공원 내에서도 유독 바람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산을 따라 빙하가 아름답게 흘러내리던 프란세스 계곡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바람에 맞서야 했다. 아침 일찍 바람이 잠잠할 브리타니코까지 다녀오는 사람이 많았고, 낮시간에는 자주 폐쇄되는 같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아무래도 브리타니코는 라스 토레스를 보는 보다 운이 필요한가 보다. 다음을 기약하는 밖에.


심심찮게 닫힌다는 브리타니코


"날씨에 대해 물어보지 마세요. 우리는 파타고니아에 있으니까요."


프란세스 계곡을 내려와 다음 숙소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끔찍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강도의 바람이 쉴새 없이 불어댔고, 쏟아지는 빗물이 모여 등산로를 시냇가로 바꾸어 버렸다. 덕분에 신발의 방수 기능이 매우 훌륭한 것을 알았고, 점퍼의 방수 기능이 형편없음을 알게 되었다. 중간에 위치한 캠프장에서 잠시 몸을 녹이는 동안 아버님께서 끓여준 라면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였는데, 인생(?)에서 잊을 없는 라면 중에 하나였다. 환경 문제로 설거지 조차 금지된 캠프장에서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라면을 쓱쓱 긁어 먹었다. 기운을 차리고 서둘러 근처 숙소에 도착하여 몸을 말렸다. 이미 트레킹을 포기하고 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산장의 난로가에 모여 있었다. 옷을 말리지 못하면 다음날 산행에 지장이 생길까봐 최대한 오랫동안 산장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때 정말 외국인들 수십명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의 6시간을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 보내는 요령을 깨우쳤다


프란세스 계곡 전망대. 풍경은 끝내줬지만, 날씨는 끔찍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트레킹을 시작했다. 같이 트레킹을 하던 분들이 2시간 거리의 다른 산장에 묵는터라, 그분들의 출발 시각에 맞추기 위해 내가 서두르기로 했다. 어제의 험악한 폭풍우는 약한 비로 바뀌어 있었고, 마저도 서서히 그치더니 해가 뜨고 무지개가 나타났다. 해가 환하게 비추던 우측의 푸른 호수와, 이름 그대로 뿔처럼 솟구쳐 있던 좌측의 로스 쿠에르노스 Los Cuernos 모습은 정말 잊기 힘든 장관이었고, 날씨로 인해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조금 잊혀지게 만들었다.




이날 아침, 부부 분들과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날 날씨를 장담할 없으니, 날씨가 좋은 오늘 무리해서 라스 토레스까지 가고 내일 쉬는 쪽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전체 W트레킹 이동 거리의 절반 가량을 오늘 하루동안 소화하기로 것이다. 더군다나 라스 토레스까지 가는 길은 토레스 파이네 전체에서 손꼽히는 고난이도 코스였다. 그치만, 전날의 끔찍한 경험을 상기하며 우리 일행은 망설임 없이 라스 토레스로 향했다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매고, 이날 하루동안만 6 걸음을 걸었고 40km 넘는 거리를 움직였다. 트레킹 도중에 날씨는 봄이 되었다 여름이 되었고, 가을이 되었다 다시 초겨울이 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좌측에 있던 산의 모습은 변화무쌍하게 바뀌었고, 좁은 길목과 돌무더기 산을 넘어서 마침내 3개의 푸른 기둥, 라스 토레스에 도착했다. 게임 오브 속의 요툰하임처럼, 끝없이 펼쳐진 세계의 무게감이, 구름이 슬쩍 걸쳐있던 각각의 기둥으로부터 느껴지기까지 했다. 넓직한 돌덩이 위에 앉아 넋을 놓고 장관을 구경하는 동안 기둥을 가리던 구름이 번갈아가며 하나씩 사라지며 기둥의 온전한 모습을 잠깐씩 보여주었다


푸른 빛의 탑, 라스 토레스.


힘든 일정이었지만, 해치우고 나니 마음은 편했다. 함께 라스 토레스를 구경하고 트레킹을 마무리한 아버님 어머님과 저녁을 먹으며 촬영한 사진 구경도 하고 트레킹 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 숙소에는 등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있었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어머님께서 관심이 많으셨고 이들 일행과 이런 저런 대화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커다란 박스에 가득 담아온 소주를 늦은 시각까지 마시며 소리로 소란을 피우는터라 눈살이 지푸려 졌고 외국인들이 항의까지 하여 급기야 아버님께서 나서서 이들의 음주를 말리기까지 했다. 다들 사회에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있으신 분들이셨는데, 칠레까지 와서 한국의 뒷산을 오르는 등산객처럼 행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달픈 트레킹이 모두 끝났지만 다음날 나는 전날 아침 파악해 해뜨는 시각에 맞춰 새벽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에 반사되어 붉게 달아오르는 라스 토레스의 모습을 숙소 마당에서 지켜보며 라스 토레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추억으로 되새겼다. 그림같이 아름답다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다. 직업 탓인지는 몰라도, 두고두고 그때의 일을 떠올릴 때면 정말 게임 같이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어색하고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말이다.





셋째날 고생한 덕에 넷째날은 숙소에서 쉬고 여유있게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올 준비를 했다. 하지만 국립공원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복귀하는 버스 시간이 꼬여서 국립공원 입구에서 6시간동안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현금만 주면 아무 버스나 있는데, 괜히 표를 예약해 놓은 탓에 마냥 기다릴 밖에 없었다. 미리 끊어놓지 말걸 싶었다 (반대로 말하면, 글을 읽고 토레스 파이네를 방문하실 분들은 푸에르토 나탈레스 버스 티켓을 미리 사두지 않아도 된다.) 그치만 나는 이미아무것도 안하고 6시간을 가만히 있어본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루함을 극복할 요령이 충분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돌아오자 마자 렌트한 장비를 반납하고 마트로 향했다. 저녁거리를 구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토레스 파이네 트레킹 완주를 기념하기 위해 아우스트랄 맥주 토레스 파이네 마시고 싶었다. 함께 트레킹했던 부부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왔다면 같이 왁자지껄하게 완주를 기념할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아쉬웠던 사실은, 숙소 스탭의 양해를 구하고 저녁을 먹고 있던 와중에, 내가 머문 숙소에서 음주가 금지되어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결국 아쉬움이 가득 담긴토레스 파이네 배낭에 넣은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로 향할 밖에 없었다


- 5. 토레스 델 파이네, 끝.




구성상 본문에 포함시키지 못한 사진들 입니다: 









































의족으로 트레킹 코스를 다니는 분도 있었다. (흰티를 입고 파란색 가방을 메고 계신 분)











말은 중요한 물자 운송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