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만 여명에 불과한 아르헨티나 남부의 작은 도시 엘 칼라파테 El Calafate (이하 칼라파테)는 아주 오래전부터 울을 거래하던 상인들이 잠시 머물던 쉼터였다. 이후 정부의 정책에 의해 거주지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옥빛의 거대한 호수 라고 아르헨티노 Lago Argentino가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칼라파테 Calafate’라는 이름은 누수 방지 Caulk를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엄청난 양의 빙하수가 칼라파테에 막혀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하고 라고 아르헨티노가 되고 말았다.
이곳은 이과수 폭포와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며, 이곳에 위치한 파르케 로스 그라시아레스, 즉 빙하 국립 공원 Parque Nacional Los Glaciares은 바로 옆에 위치한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과 함께 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가끔 이과수 vs 칼라파테 (정확히 말하면 모레노 빙하)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의외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경험상으론, 동양에서는 대체로 이과수 폭포의 거대함을, 서양에서는 대체로 모레노 빙하의 굉장히 독특한 특성을 더 인정해주는 늬앙스이다. 론리플래닛은 모레노 빙하를 1위로, 이과수를 2위로 꼽았는데, 사실상 공동 1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 듯 하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한국어 위키에는 두번째로 크다고 적혀있지만, 영문 위키에는 가장 크다고 적혀있다)인 빙하 국립 공원은 앞서 방문한 엘 찰텐과 피츠로이와 함께, 아르헨티나 최대 호수 라고 아르헨티노를 모두 포함하여, 7,269.27 km2에 달하는 총면적 중 30%를 빙하로 채우고 있다. 남미 최대 규모의 빙하 웁살라 빙하 Glaciar Upsala, 세계 3대 담수 보호 지역이자 국립 공원 내 최고 인기 관광지인 페리토 모레노 빙하 Glaciar Perito Moreno 등 여러 빙하들이 이곳에 있으며 이는 그린란드, 남극과 같이 극단적인 빙하 지역을 제외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에 해당된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빙하 국립공원이 지리적으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는데, 칠레의 거대한 산맥으로 부터 형성된 빙하가 아르헨티나 칼라파테 지역 인근에 집중적으로 흘러내린 샘이다. 좋은 건 나눠가지라는 신의 섭리일려나.
빙하 국립 공원의 어마어마한 크기
(출처: https://albinger.me/2012/10/23/argentinas-hiking-capital-el-chalten-and-monte-fitz-roy/)
이들 빙하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빙하는 역시 페리토 모레노 빙하, 속칭 모레노 빙하일 것이다. 이름을 보고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을 탐험하였고 이후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국경 확립에 큰 영향을 끼친 아르헨티나 탐험가 프란시스코 모레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페리토 Perito는 대략 특별 고문 Technical Specialist라는 뜻의 스페인어인데, 프란시스코 모레노는 칠레와 파타고니아 지역 영토 분쟁 당시 페리토로 임명되어 칠레의 국경 논리에 반증을 제기하여 아르헨티나 영토 방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모레노 빙하에 대해서,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 가장 멋진 빙하 등 다양한 감상이 존재하지만, 가장 와닿았던 평은 ‘전세계에서 가장 관광하기 좋은 빙하’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빙하 투어에서, 관광객이 빙하에 접근하기 위해 특수 차량을 동원하거나, 높은 고도까지 힘들게 걸어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모레노 빙하까기 가는 길에는 아스팔트가 꼼꼼히 깔려있고, 도로 주변을 날아다니는 콘도르를 구경하며 고속버스를 타고 빙하 바로 앞까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칠레 파타고니아의 빙하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빙관이 커서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에서 형성된 빙하가 칼라파테의 낮은 지대까지 유지되는데다, 모레노 빙하 바로 앞까지 육지가 형성되어 있는 덕분이다. 버스를 타고 모레노 빙하 정류장까지 와서 정류장 앞 전망대의 의자에 앉아 모레노 빙하의 거대한 판 형태를 멍때리며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모레노 빙하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윈도우 바탕화면에 나오는 바로 그 빙하가 있는 곳, 엘 칼라파테. 이 정도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뭔가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발생하는 대상을 관찰하는 것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모레노 빙하 판의 두 모서리에서 몇십분 간격으로 하루종일 빙하가 무너져 내린다. 아이슬란드 요쿨살론 Jökulsárlón 보트 투어 당시, 보트를 몰고 빙벽까지 다가간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평생에 한 번이라도 빙하가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고 했던게 기억난다. 모레노 빙하에서는 그런 호사(?)를 맘껏 누릴 수 있는데, 하루에만 무려 2m를 이동하는 모레노 빙하 특유의 엄청난 속도 덕분이다. 보통의 빙하는 산 꼭대기에서 형성되어 빠르게 내려오다 일정 지역 부근에서 정체현상을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빙하들끼리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자글자글 찌그러지면서 뾰족뾰족한 형태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모레노 빙하의 빠른 이동 속도는 빙하를 상대적으로 더 평평하게 만들고, 관광객들에게 하루종일 빙하가 무너지는 장관을 선사한다. 다른 빙하가 가지지 못한 이런 독특한 특성이 모레노 빙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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