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아이아의 대표적인 투어는 크게 4가지 -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 트레킹, 마르티알 빙하 트레킹, 비글 해협 및 펭귄 투어, 에스메랄다 호수 트레킹.
투어 얘기를 좀 더 하기 전에 뜬금없지만 영화 ‘레버넌트’의 제작 과정에 대해 잠깐 얘기해볼까 한다. 공식적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봐도 오스카 트로피를 간절히 원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쓰리 아미고 3 Amigos' 중 한 명으로 디카프리오와는 달리 아카데미 수상자이자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작품 욕심이 어마어마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가 아카데미 수상에 도전하고자 만든 영화 ‘레버넌트 The Revenant’는 실제와 같은 자연 풍광과 풍광에 녹아든 배우의 모습을 담으며 이야기를 늘여갔다. 그러다보니 그 욕심이 과해(?) 영화의 촬영 기간이 늘어났는데, 이로 인해 제작비 증가 뿐 아니라, 주로 촬영하던 캐나다와 미국 지역의 계절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버려 더이상 촬영을 진행시키기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다. 어떻게든 촬영을 빨리 마무리짓기 위해 화면에 겨울을 담을 수 있는 촬영지를 물색하던 도중, 우수아이아 주변 자연경관에 깊은 인상을 받고 후반부 촬영을 우수아이아에서 진행하였다고 한다.
쓰리 아미고는 친분이 두터운 멕시코 출신의 오스카 수상 감독 3인을 뜻한다.
나머지 2명은 알폰소 쿠아론 Alfonso Cuarón, 기예르모 델 토로 Guillermo del Toro이다.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과 에스메랄다 호수는 영화 ‘레버넌트’를 통해 소개되었던 우수아이아의 독특한 자연경관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우수아이아를 포함한 이 지역 전체를 일컫는 이름인데, 그런 이름을 따서 국립공원을 만들었을 만큼 우수아이아의 풍경을 상징하는 곳이라 부를만 하다.
한편으로는,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 공원을 걸으며 앞으로 마주하게 될 파타고니아 등산을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비글 해협을 끼고 있는 이곳 국립 공원은 비글 해협 투어에서는 보기 힘든 해변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파타고니아 지역의 강한 바람으로 인해 뿌리를 들어낸 체 쓰러질 듯 한쪽 방향으로 휘어져 있는 무수한 나무들과 소심한 듯 아름다워 보이는 들꽃, 맑고 푸른 호수와 바다 등 파타고니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을 미리 맛볼 수 있었다. 경사도 완만하고, 코스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 난이도도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이곳 트레킹의 가장 큰 장점은, 같은 길을 왕복하여 걸을 필요 없이, 트레킹 코스를 다 돌고 난 후 셔틀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통해 손쉽게 우수아이아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나무 뿌리가 많이 들어난 탓에 길이 매우 울퉁불퉁하므로, 개인적으로는 발바닥이 단단하고 발목을 잘 고정시켜주는 신발을 신고 갈 것을 추천한다.
옛 모습을 갖고 있는 세상의 끝 열차 (출처: 세상의 끝 열차 홈페이지)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을 상징하는 두 가지 명물이 있다. 하나는 세상의 끝 열차. 한때는 우수아이아의 교통수단이었으나 지금은 관광 목적을 띄고 운형 중인 이 열차는, 짧은 거리를 잠깐 운행하고 많은 돈을 받지만, 세상의 끝을 기차를 타고 달린다는 큰 상징성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 세상의 끝 우체국이다. 이곳 국립공원의 초입에 위치한 이곳 우체국에서 엽서를 구매하여 부치면, 이곳에서만 찍어주는 도장을 엽서에 찍을 수 있다. 또한 세상의 끝에 왔다는 기념으로 여권 도장도 찍어준다. 우체국에서 도장을 찍어주는 할아버지가 꽤 유명했는데, 여권 도장을 찍어줄 때 본인 얼굴이 그려진 스티커도 함께 붙여준다. 뭔가 공식 인증, 품질보증 스티커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영어를 꽤 잘하시고 서비스가 좋으셔서 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았다. 참고로 세상의 끝 우체국 뿐 아니라, 우수아이아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세상의 끝’ 인증 여권 도장을 찍어준다. 다양한 도장으로 여권 페이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우수아이아에서의 내 마지막 일정은 우수아이아의 상징과도 같은 비글 해협 투어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선에 위치하여 줄곧 군사 분쟁을 일으켜 온 비글 해협은 수로 연구를 위해 남미 지역을 탐험하던 연구선 비글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비글호의 선장은 엘 찰텐의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에 이름을 남긴 로버트 피츠로이 Robert FitzRoy였는데, 지질학 전문가의 항해 참여가 이점이 있다고 생각해온 그는 이미 정원이 꽉 찬 비글호에 지질학 전문가를 추가로 승선시키고자 했다. 이때 자비로 항해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가 바로 찰스 다윈 Charles Darwin이었다. 약 5년 동안 진행된 비글호의 두 번째 항해 Second voyage of HMS Beagle 를 통해 다윈은 저명한 지질학 전문가이자 화석 수집가가 되었고, 그가 쓴 ‘비글호 항해기 The Voyage of the Beagle’는 그를 저명한 작가로 만들었으며, 항해 도중 방문했던 갈라파고스 섬에서의 경험은 20년 후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출간으로 이어졌다. 비글 해협 서쪽에는 다윈이 기지를 발휘해 빙하 붕괴로 인한 파고로 부터 선원들을 구한 것을 기념하여 이름 붙은 다윈 사운드 Darwin Sound라는 곳이 존재하기도 한다.
비글호 항해기 한국어판 (출처: 교보문고)
비글호가 새로운 세상을 탐험했던 것 처럼, 투어를 통해 해협을 항해하며 세상의 끝 등대와 펭귄, 가마우지, 물범 등 다양한 동물을 만나 볼 수 있다. 특히나 펭귄 섬에 내려 가까이서 펭귄을 구경할 수 있는 투어가 유럽인들에게는 매우 인기가 많아, 보통은 한 두달 전에 예매를 해야한다고 한다. 다만 투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당시 거의 20만원 돈이었는데, 이렇게 비싼 비용 탓에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사실 세상의 끝 열차도 그렇고, 여긴 가성비 떨어지는 게 워낙 많아서 투어 결정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지만, 결국 그 가성비를 결정하는 건 경험을 한 본인의 감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가성비가 엉망이 된 것은, 펭귄 섬 투어를 피라 투르 Pira Tour에서 독점하고 있고, 거금을 서슴없이 지불할 수 있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워낙 인기있는 투어인 탓이 컸다. 앞으로도 계속 경험하게 되지만, 아르헨티나는 유명한 특정 지역, 특히 환경 문제로 입장 수를 제한할 수 밖에 없는 투어를 에이전시 한 곳이 독점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주워들은 바론, 독점하는 에이전시가 이곳 투어를 담당할 뿐 아니라 투어 수익으로 관광지 관리까지 하게 된다고 한다. 그 의도는 나쁘지 않으나 독점이다보니 여행사에서 관광객의 요구나 소득 수준에 맞춰 가격을 마음대로 올려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현지인들에게도 동일한 가격을 요구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도저히 참여할 수 없는 투어가 되어버렸다는 원망도 많았다. 물론 파타고니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비용이나 모레노 빙하 투어 비용을 경험한 뒤론 피라 투르가 요구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까지 느껴졌다. 가난한 자들의 남미는 북부 지역, 부자들의 남미는 남부 지역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퇴직금으로 파타고니아에 온 나는 결코 부자가 아니다…)
투어가 진행되던 유람선 안에서는 우수아이아와 비글해협에 관한 여러가지 얘길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수아이아 지명의 발음에 관한 것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우수아이아’가 아니라 ‘우슈아이아’가 정확한 발음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우슈아이아~ 라고 말씀하시던 가이드 분의 설명 도중 유람선이 국경을 넘는지 감시하고 있는 거대한 칠레 군함을 만날 수 있었고, 잠시 휴대폰에 칠레 국경을 넘었다는 문자도 왔다.
비글 해협의 가운데에 위치한, 세상의 끝 등대로 유명한 이 등대의 이름은 Les Eclaireurs Lighthouse(프랑스어로, 정찰 등대라는 뜻). 1920년부터 운행했다고 하니 대략 100년 정도 되었다. 참고로 쥘 베른의 ‘세상의 끝에 있는 등대’는 이 등대가 아니라고 한다. (유사품 주의)
펭귄 섬에 도착했을때, 영어 가이드가 필요한 사람은 나와 어떤 어린 아이, 단 둘 밖에 없었다. 그 어린 아이도 부모님이 스페인 어를 잘 하셔서 굳이 가이드의 영어 설명이 필요없었다. 결국 실질적으로 영어 가이드가 필요한 건 나 혼자였는데, 그럼에도 가이드는 필요한 설명을 충분히 해주었다. 섬에 도착하자 마자 커다란 황제 펭귄이 머리를 숙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이곳 섬에 없었던 황제 펭귄 2마리가 올해부터 갑자기 이곳 섬에 나타났다고 한다. 아마도 푼타 아레나스 근방에 있어야 할 친구들이 집을 제대로 못찾고 바보 같이(?) 여기로 떠내려온 듯 한데, 푼타 아레나스의 어마어마한 황제 펭귄 투어 비용을 생각하면 관광객들에겐 행운이다(?). 마젤란 펭귄은 아르헨티나의 여름 동안 새끼들을 이곳에서 키운 후 따뜻한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돌아올 때에는 원래의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땅굴처럼 생긴 집이 이곳 저곳에 있어 서로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인데도 정확히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니 신기했다. 펭귄 부부는 2마리의 새끼를 땅굴처럼 생긴 집에서 키우는데, 어릴땐 털복숭이이던 새끼는 자라면서 갈색 털이 빠져 매끈한 모습의 어른 펭귄이 된다고 한다. 펭귄 투어에 대한 여러가지 악평과 소문, 이를 테면 펭귄이 없다든지, 생각만큼 가까이 가지 못한다든지 하는 얘기를 듣고 갔는데, 실제론 50cm까지 접근이 가능했고, 펭귄이 지천에 널려 있어 밟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정도였다. 투어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마젤란 펭귄의 귀여운 움직임 만큼 순수해보였다.
그렇게 넓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아르헨티나는 육류 소비에 비해 해산물 소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이곳 우수아이아는 남미의 대표적인 킹크랩 수확 지역으로, 거리에는 킹크랩 식당이 심심찮게 있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품질좋은 킹크랩을 맛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 또한 펭귄 투어를 다녀와서 우수아이아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민박집에서 잡아 온 킹크랩을 먹으려 했다. 하지만 한 여름의 킹크랩은 살이 오르지 않아, 먹고 실망했다는 다른 투숙객 분들의 얘길 들었다. 아쉽지만 우수아이아의 킹크랩은 언제가 될지 모를 또 다른 겨울에 먹어보기로 하고 킹크랩에 쓸 돈은 미래에 경험하게될 파타고니아에서의 또 다른 투어와 소고기 값에 투자하기로 다짐하며 우수아이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우수아이아의 모토는 ‘우수아이아, 세상의 끝이자 모든 것의 시작 Ushuaia, fin del mundo, principio de todo’'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세상의 끝에 왔지만, 나의 파타고니아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2. 우수아이아, 끝.
- 비글 해협과 펭귄 투어 사진은 우수아이아 Ushuaia (3) - 비글 해협 + 펭귄 투어 특집에 모아두었습니다. (바로가기)
참고
피라투르: http://www.piratour.net/en/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 https://www.parquesnacionales.gob.ar/areas-protegidas/region-patagonia-austral/pn-tierra-del-fuego/
세상의 끝 열차: http://www.trendelfindelmundo.com.ar/en/horario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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