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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Patagonia, and more

12. 아타카마 Atacama (2)


역사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칼라마 공항에서 칼라마를 거치지 않고 아타카마 지역의 도심에 해당하는 페드로 아타카마 San Pedro de Atacama (이하 아타카마)  곧장 향하는 버스에 탑승한다. 아타카마로 향하는 동안 곳곳에 고여 있는 빗물과 무성한 사막 식물을 보며 여기가 진짜 내가 알던 아타카마 사막이 맞는 것인지,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었다. 산티아고 숙소에서 만났던, 아타카마를 방문했다는 사람에게서 들은 폭우를 틈타 뿌리내리고 자라난 식물들인 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2015 (남반구 기준) 내린 폭우로 꽃밭이 아타카마 사막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사막에서 흔히 있는 풍경은 아니다.


아타카마 가는 길의 풍경


인터넷 상에 많이 돌아다니던 꽃 핀 사막사진들의 정체가 바로 아타카마 사막이다.

(출처: https://www.huffpost.com/entry/atacama-desert-flowers_n_59a806b0e4b0a8d145738250)


아타카마는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또한 전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기도 하다. 안토파가스타 지역은 바다와 인접한 곳임에도 평균 고도가 3000m 이르는데, 가운데서도 아타카마 사막 인근의 고도는 3000m~5000m 이른다. 사막을 둘러싼 안데스 산맥과 칠레 해안 산맥의 높은 고도는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생성된 구름이 아타카마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버렸다. 강우량이 너무 적어 우기가 불규칙적이며, 높은 산들이 즐비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산꼭대기에 조금 쌓인 만년설을 제외하고는 빙하가 존재하지 않는다. 유사이래 강우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장소가 발견될 정도인데, 2000만년 이상 비가 적이 없는 지역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이다


빙하대신 이런 곳이 있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탐험 연구 논문에서 처음 묘사된 페니텐트 Penitente라고 불리우는 눈 지형으로,

건조한 고산지대의 강한 바람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https://news.softpedia.com/news/Shark-Tooth-like-Ice-Formations-Observed-in-the-Atacama-Desert-482916.shtml)


아타카마 지역은 지구상에서 화성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지닌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NASA에서는 이곳의 가장 건조한 지역을 화성 탐사 테스트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높은 고도와 건조한 날씨 탓에 천문관측 지역으로도 각광받고 있는데, ALMA (Atacama Large Millimeter Array) 같이 한국을 포함한 다국적 연구진에 의해 운영되는 천문관측 시설을 통해 다양한 관측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막에 세워진 알마 관측소 (출처: https://lb.wikipedia.org/wiki/Atacama_Large_Millimeter_Array)


고산지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저지대에 마을이 생성되는데, 페드로 아타카마 또한 인근에 위치한 고산지대인 푸나 아타카마 Puna de Atacama 에 비해 그나마 고도가 가장 낮은 2500m 정도의 고도에 위치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마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이곳보다 높은 지역이 없다.) 사막 도시 답게 칠레에서도 낙후된 곳이었으며, 배수시설이 존재하지 않은 탓에 붉은 흙으로 이뤄진 도로 곳곳에 물이 고여있었다


칠레에서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지역으로 넘어가기 위한 가장 주요한 곳에 위치한 탓에, 아타카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시 일전에 우수아이아에서 만났던 분들과 재회할 계획을 세웠고, 중에서도 나와 일정이 겹치는 형들과는 함께 2 3 투어를 통해 볼리비아의 우유니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타카마-우유니 2 3 투어는 앞서 언급한 에두아르도 지역과 우유니 소금 사막을 거쳐 우유니 도심까지 이동하는 투어이다. 일찍 아타카마에 도착한 나는 형들이 오기 전에 미리 우유니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남은 돈을 볼리비아 볼로 환전하고, 우유니로 넘어가기 위한 투어 정보를 알아보면서, 동시에 아타카마 지역의 다른 투어 정보 또한 파악해보기로 했다. (여행 당시 지갑에는 칠레 페소, 아르헨티나 페소 아니라, 달러, 한화에 필리핀 페소, 엔화까지 있었다. 환전소 탁자 유리 아래에는 환전소 주인이 전세계 관광객들과 교환한 지폐들로 가득한데, 주인이 아직 모으지 못한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갖고 싶다면서 공식 환율보다 높은 값을 불렀다. 덕분에 나는 환율 이득을 조금 보았고, 주인의 환전소 탁자 유리 틈으로 새로운 지폐가 배치되었다.)


아타카마는 칠레 3 관광지 하나로 손꼽힌다. 대부분의 아타카마 관광지는 로스 플라멘코스 국립 보호지역 Reserva Nacional los Flamencos 속해있다. 위치가 위치이니 만큼 지질학적, 식생학적으로 거의 유사한 지역이 볼리비아 - 칠레 국경에 의해 볼리비아의 에두아르도 지역과 칠레의 플라멩코스 지역으로 나뉜 것으로도 있다. 별에서 그대 덕분에 아시아권에서 유명해진 달의 계곡 Valle de la Luna 뿐만 아니라, 남미 최대의 간헐천이자 유럽인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어온 타티오 El Tatio, 특이한 색상의 다양한 플라밍고들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으며 미스칸티 호수, 미니케스 호수 Lagunas Miscanti y Miniques로 대표되는 고산 지대의 호수들 Lagunas del Altiplano, 고산지대 호수 옆에 붉고 평평한 돌이 독특한 형태로 쌓여있어 '붉은 돌'이란 이름이 붙은 피에드라 로하스 Piedra Rojas 지역이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자정 가까운 시각에 건조한 사막 지대로 이동하여 진행되는 관측 투어 또한 인기가 많은데, 전문성 있는 가이드나 전문 장비를 요구하는 탓인지 수요에 비해 투어를 진행하는 투어사가 많지 않아 예약에 꽤나 애를 먹었다.


로스 플라멘코스 국립 보호지역의 모습


피에드라 로하스의 모습


라구나 미스칸티 (위)와 라구나 미니케스 (아래)


터키 카파도키아처럼 이곳에서도 새벽 시간에 열기구를 운행한다. 


타티오에서 맞이하는 일출과 달의 계곡에서 맞이하는 일몰, 그리고 피에드라 로하스의 붉은 바위와 고산지대 특유의 풍광은 아타카마를 오랫동안 추억할 있게 해준다. 다만, 고산 지대 풍경 자체는 사실상 같은 지형군에 속하는 볼리비아의 에두아르도 쪽이 훨씬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2 3 투어를 통해 볼리비아에서 넘어온 사람에게는 아타카마가 에두아르도의 하위호완 정도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들 지역 , 특히 타티오는 아타카마 관광의 상징과도 같다. 타티오는화덕’, ‘할아버지 다양한 의미를 지녔는데, 한때 아타카마 관광객의 90퍼센트가 타티오를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미국 옐로우스톤 Yellowstone과 러시아 캄차카 Kamchatka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간헐천인 이곳은 예전부터 지열 발전 시설을 설치하려는 시도를 반복해왔다. 그러다 2009, 시추 지역에서 갑자기 솟구친 간헐천이 한달가량 뜨거운 물을 60미터 높이로 뿜어내면서 타티오 지역 환경 피해와 그로 인한 관광 자원 훼손, 관광객 안전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특히나 지역 개발에 의해 더이상 간헐천이 생성되지 않거나 생성량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점이 관광업체들의 우려가 컸으며 과정에서 지열 발전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타티오 지역이 환경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고 발전 시설 개발이 전면 중단되는 선에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타티오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꽤 멀어서, 투어에 참여하려면 진짜 일찍 일어나야 한다.


저 멀리 보이는 푸타나 화산 Vulcan Putana과 푸타나 강의 지류.

푸타나 화산은 활화산으로,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산 정상 부근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타티오 인근에 위치한 볼리비아 원주민 마을. 태평양 전쟁으로 국적이 바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앞에서 굽고 있는 것은 무려 라마 고기 꼬치.


이른 새벽 시각에 타티오에서 일출을 , 오후 늦은 시각에는 일몰을 보기 위해 형들과 함께 달의 계곡으로 갔다. 한때는 바다였던 이곳 지역은 지각변동에 따른 융기로 인해 고산지대가 되었고, 그때의 흔적은 간간이 발견되는 산호 화석과 곳곳에 새겨진 흰색 퇴적층으로 남아있다. 융기 과정에서 빠져나간 물줄기와 고산 지대에 불어닥친 강한 바람이 소금을 머금은 바위를 깎아, 표면이 연상되는 기괴한 계곡을 만들었고, 그런 계곡 위로 고산 지대의 분홍빛 보라빛 황혼이 떨어진다….


기대를 안고 올라갔는데 저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마주하길 기대했는데, 우리 일행이 달의 계곡에서 만난 다름 아닌 천둥 번개를 동반한 어마어마한 양의 우박이었다. 사막에서 번개와 우박이라니사실 앞서 언급했던 산티아고에서 폭우를 만났다는 사람 가운데 달의 계곡에서 번개를 맞고 병원에 실려갔다 돌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달의 계곡을 번쩍이던 번개를 순간 그에게서 전해들은 무용담(?) 떠올랐다. 아무런 건물도 존재하지 않은 허허벌판의 사막 위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들고 있던 셀카봉이 피뢰침 역할을 했고, 떨어지는 번개의 충격파에 사람들이 나가 떨어지고 일부는 기절까지 했다고 한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고 하지만, 달의 계곡은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관광객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있었다


바닥에 하얀 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우박이다...


철수명령을 전달받자마자 허겁지겁 셀카봉을 접어 가방에 쑤셔넣고는 계곡을 내려와 차량에 탑승했다. 사랑을 나누며 계곡을 올라가던 커플들의 팔짱은 몰아치는 번개와 쏟아지는 우박 탓에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그런 난리통 속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붙잡고서 번개를 피하고 있던 가족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가 도심에 가까워질 수록 쏟아지던 우박은 점점 비로 바뀌어갔고, 멀리 보이던 아타카마 도심은 육안으로도 어마어마한 비가 내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아타카마 시내에 도착했을 도시 전체가 빗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이미 모든 기능은 마비되어 있었다. 난생 처음 와본 사막에서, 1년에 올까말까한 사막의 폭우를 만나 한국에서도 마주한 없는 홍수를 경험하게 되었다.


원래는 달의 계곡 투어가 끝나면 이어서 관측 투어를 진행한 형들과 함께 장을 보면서 볼리비아로 넘어갈 준비를 계획이었으니, 홍수로 인해 차질이 생겼다. 일단은 숙소로 돌아간 , 예정된 투어 시간에 투어사 앞에서 모이기로 하고 형들과 헤어졌다. 물줄기를 피해 간신히 도착한 숙소는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숙소에 있던 유럽인들은 뭔가 어설픈 빗질을 하며 방으로 유입된 빗물을 제거하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뭔가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을때, 마침 한국인으로 보이는 어떤 여성분께서 대뜸한국인이세요?’라고 물어봤다. 숙소의 배수시설이 엉망이어서 내린 빗물이 건물 가운데 공터로 모인 저지대에 위치한 방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공터의 물을 함께 제거하자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누님과 둘이서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 거의 일당백(?) 맹활약을 펼치며 물을 제거해갔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런 상황에는 익숙하기 때문에, 어설프게 대처하는 유럽인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면서 체계적으로 물을 제거해갔다. 배수 시설도 엉망인데다 배수 처리도 제대로 못하는 호스텔을 원망하면서 이정도면 숙박비를 환불받아야 하는거 아니냐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쉬지 않고 2시간 정도 물을 제거했더니, 공터에 모인 대부분이 제거되었고, 침수되었던 방들도 대부분 복구가 되었다. 나와 누님을 포함해, 일에 동원된 모두가 너무도 지쳐있었던 탓에, 이상 일을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자연스레 배수 작업은 종료되었고, 나는 시내에 위치한 투어사를 방문해야 하는 사정을 누님에게 말했다. 누님께서는 근처 숙소에 머물고 있는 친한 동생과 저녁을 먹을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가보자고 했고, 누님과 또다른 누님 분의 매우 유창한 스페인어 실력 덕분에 무사히 택시에 탑승했다. ‘택시임을 상징하는 모양 인형을 매단 차량을 타고 운전 기사분께 허기를 채울만한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님은 도심에 물이 가득차 있어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았으며, 사람이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식당에 도착한 , 혹시 싶은 마음에 걸어서 도심까지 나가보았지만, 빗물이 도로를 가득 매운 도심은 어둠에 갇혀 있었다. 가게로 돌아왔더니 약간의 술과 피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촛불 아래에서 누님들과 음식을 나눠먹던 도중 전기가 들어오자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불이 들어오기 전까지 촛불에 의지하여야만 했다. 저 음료수가 알콜도 들어가 있고 맛도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날 우유니 2박 3일 투어가 고산지대에서 진행되다보니 고산병이 걱정되어 음료수를 많이 먹어보진 못했다.


불이들어온 후 식당 내부의 모습. 에너지의 소중함을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계기였다.


식사 도중 누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누님들이 코이카에서 남미지역으로 파견 교사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같이 배수 작업을 했던 누님은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오셨다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볼리비아의 우유니 지역으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볼리비아 비자 발급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때, 분께서는 안토파가스타에서 무사히 비자를 받았다며, 다음엔 칼라마 같은 위험한 곳에 가서 발급받지 말고 안토파가스타에서 맘편히 발급받으라는 팁을 알려주었다 (나한테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정보 같지만, 덤으로 잘생긴 직원도 있다고 한다.)


식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마침 전기 시설이 복구된 덕에 형들과 연락이 되었다. 늦은 시각이지만 볼리비아에서의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형들이 위치한 숙소로 걸어갔다.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한 형들의 숙소에는 침수 피해를 겪은 흔적이 없었다. 내가 숙소의 물을 제거하느라 2시간 동안 빗질을 하는 동안, 형은 어찌어찌 투어사를 방문하여 달의 계곡 투어 중단과 관측 투어 취소에 따른 투어비용을 환불받았고, 홍수로 인해 아타카마 지역이 고립되고, 우유니와 아타카마 지역을 연결하는 길을 이용하기 어려워진 탓에 늦춰진 볼리비아 투어 일정에 대해 전해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형들이 알아서 장도 봐두었다고 했다. 이후 볼리비아에서 함께할 시간 동안의 일정에 대해 형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숙소나 비행편을 추가적으로 예약하기도 했다


다음날 부터 진행될 2 3 투어를 준비하기 위해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가고자 밖으로 나왔고 형들이 나를 배웅해 주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순간 우리는 다음날의 일정을 망각하고는 불빛이 없는 근처 공터로 걸어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터 바닥에 입고 왔던 판초 우의를 벗어 깔고는 형들과 누워서 많은 별자리와 간간히 떨어지는 유성을 보았다. 앞으로의 여행 일정이 순탄하길 기도하면서.




- 12. 아타카마, 끝.
- 더 자세한 아타카마 투어 사진은 (3) 아타카마 투어 특집에 모아봤습니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