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릴로체에서 푸에르토 몬트로 이동하기 위해 아침 일찍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매번 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낮선 도시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교통 수단은 시내버스가 아닐까 싶다.
바릴로체를 떠나 파타고니아를 벗어나게 되면 우리에게 익숙한 남미의 치안수준을 겪게 되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더 가방과 캐리어에 신경썼다. 국경 지대의 검문도 훨씬 강도가 높았다. 여기서 처음으로 칠레 세관의 마스코트인 검사견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검사견의 검사 방식은 나름 보는 재미가 있다. 사람들이 짐을 탁자 위에 올려 놓은 뒤, 세관원이 짐들 위로 어떤 냄새를 뭍힌 후, 개에게 신호를 보내면 개가 뛰어가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가방을 탁자 아래로 떨어뜨리면, 세관 직원이 가방 주인에게 가방을 열어달라고 하여 정밀 수색을 벌인다. 과일, 채소, 꿀, 유제품, 고기, 각종 지역 토산물 등 세관 금지 물품이 생각보다 다양한데, 자국 산업의 보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한 편으론 마치 우리가 남미서 제일 잘사는 나라이니 만큼 이런 것에 더 신경쓰겠다라는 까탈스러움도 느껴졌다. 마치 남미의 미국 세관 같달까.
귀엽고 친근한 외모의 검사견은 이 가방 저 가방을 들쑤시다가 갑자기 아무 죄 없는 내 가방을 집중적으로 뒤적였다. 그 바람에 세관 직원들에게 가방 검사를 당하고 말았다. 가방을 열어 이리저리 살펴봐도 별 물건이 없자 직원은 이전에 가방에 넣어둔 음식물 냄새에 반응한 거 같다며 협조해줘 감사하다고 친절히 응대했다.
내 가방을 함부로 대한 녀석...
그렇게 칠레 입국 신고식을 치르고 칠레의 중부의 항구도시 푸에르토 몬트에 도착했다. 바릴로체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시작이자 끝이라면, 푸에르토 몬트는 칠레 파타고니아의 시작이자 끝이다. 한때 울창한 숲이던 이곳은 개척과 독일 이민자 유치를 통해 칠레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몬트라는 지명 또한 독일 이민자 유치를 실행한 칠레 대통령 마누엘 몬트 Manuel Montt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와 철도로 연결되면서 푸에르토 몬트는 칠레 파타고니아의 출입구가 되었다. 푸에르토 바라스를 통해 바릴로체로 넘어가는 오래된 길 뿐만 아니라, 푸에르토 몬트로 부터 인근의 칠로에 섬 Isla Grande de Chiloé을 거쳐 육로와 해로를 통해 중부 파타고니아로 이동할 수도 있고 나비막 Navimag을 타고 칠레 파타고니아 피오르드 지역을 거쳐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갈 수 있다. 또한 비행기를 통해 중부 파타고니아의 중심지인 코이아이케나 남부 파타고니아의 중심지인 푼타 아레나스로 이동할 수도 있다.
푸에르토 몬트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운행하는 나비막 Navimag
칠레 중남부 서해안에 위치한 파타고니아 피오르드를 관람할 수 있으며 북미/유럽의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나 역시 다음날 코이아이케 인근의 발마세다 Balmaceda 공항으로 향하는 스카이 에어라인을 탑승할 계획이었다. 푸에르토 몬트에 도착하자마자 항공권 예약을 변경하기 위해 스카이 에어라인 사무실을 찾았는데, 터무니 없는 비용을 요구했다. 아무래도 저가 항공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정가에 비해 황당할 정도로 비싼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김이 조금 샜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주인 할아버지께 푸에르토 몬트에서 먹을 유일한 한끼에 대해 추천을 받으려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연어 스테이크 집 하나와 소고기 스테이크 집 하나를 언급하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소고기 스테이크를 권했다. 갈빗살 스테이크에 반숙 계란 샐러드를 같이 먹으면 기가 막히다며, 스테이크에 갈빗대 3개가 어떻게 박혀 있는지 그림까지 그려줬다. 푸에르토 몬트가 연어 생산지로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연어 스테이크가 끌리긴 했지만, 할아버지는 소고기 품질이 훨씬 낫다며 그냥 소고기를 먹으라고 조언했다.
푸에르토 몬트는 칠레 수산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에서 잡히는 홍어는 한국으로 100퍼센트 수출된다. 홍어 수출량이 많아지자 남획이 심해지는 바람에 금어기까지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푸에르토 몬트는 전세계적인 연어 양식지인데, 이곳의 연어 양식은 여러모로 논란이 많다. 양식업을 급격히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연어의 질을 떨어뜨리는 좋지 못한 행동을 많이 했다고 알려졌다. 연어 품질 또한 좋지 못해, 저가 뷔페와 같이 질 낮은 연어를 사용하는 곳에서만 사용되며 현지 레스토랑에서도 이곳 연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연어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횟감용 간장을 챙겨갔건만,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질도 좋지 않은데다, 일정이 바뀌어 하루 밖에 머물지 못하게 되었으니 연어를 마트에서 사먹을 이유가 없어졌다.
아무튼 현지인 할아버지의 조언으로 소고기를 먹기로 했다. 맛이 정말 훌륭했는데, 샐러드와 고기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특히 계란 노른자에 슥슥 비벼 먹는 샐러드는 악마의 음식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역시 현지인들의 말을 들어 손해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너무 양이 많아서 간신히 다 먹었다. 고기를 먹는 내내 ‘코어스 The Corrs’의 노래가 들려와, 가게 주인이 코어스의 광팬이거나 친척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다 먹고 나오면서 물어보려 했는데 직원들이 다들 바빠 보여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고기도 훌륭했지만 샐러드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식당 밖을 나선 후, 항구 근처로 내려와 바다 구경을 했다. 작은 도심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인은 전혀 보질 못했는데 생각보다 일본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다보면 의외로 지역마다 일식당이 한 두개씩 있다. 푸에르토 몬트에도 유명한 일식당이 있었는데 대부분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파타고니아 지역 근처에 차가운 바다가 흐르는 탓에 횟감으로 쓸만한 건 많을 것 같은데, 육식의 수준이 남다른(?) 남미 사람들은 대게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다. 이곳의 일본인들은 마치 해산물이 얼마나 맛있는지 남미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나타난 미식의 구원자 같다고 느껴지기 까지 했다.
1월의 한국은 밤이 길지만, 1월의 파타고니아는 낮이 길다. 황혼이 남아있던 항구를 구경하다 마트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숙소 근처 마트에 달려갔다. 오랜만에 칠레에 왔으니 아우스트랄 맥주를 너무 마시고 싶었다. 이곳에서 아우스트랄 야간을 처음 발견했다. 다른 아우스트랄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우스트랄 야간을 한 병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할아버지께서 틀어 놓은 칠레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거실에서 아우스트랄 야간을 마시는 걸로 푸에르토 몬트에서의 하루를 마감했다.
- 9. 푸에르토 몬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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