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파테를 떠난 비행기의 급격한 기동 탓에 약간의 생명의 위험을 느끼긴 했지만, 무사히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 San Carlos de Bariloche (이하 바릴로체)에 도착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비행기의 랜딩 기어가 지면에 닿자 승객들이 박수를 쳤고 나도 신나게 박수를 쳤다. 살았네 살았어.
누군가에게는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여행의 시작지점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종점이기도 한 바릴로체는 칼라파테로 부터 북쪽으로 생각보다 꽤 멀리 떨어져 있고 칠레 국경과는 생각보다 꽤 가까이 붙어 있는, 북부 파타고니아의 중심 지역이다.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가 정식 명칭인데, ’산 뒤에서 온 사람들’이란 의미의 마푸체 어 ‘부릴로체 Vuriloch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름의 의미처럼, 이곳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온 스페인 성직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스위스와 자연 조건이 비슷한 탓에 많은 스위스인들이 이곳으로 건너와 마을을 형성하였고, 이후 다양한 유럽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차츰 ‘아르헨티나의 스위스’로 발전하였다. 파타고니아 최초의 스위스인 정착지의 흔적은 지금도 바릴로체에 위치한 콜로니아 수이사 Colonia Suiza 지역에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릴로체를 거쳐 칠레 푸콘 Pucón으로 넘어가거나 혹은 칠레 푸콘을 거쳐 바릴로체를 통해 아르헨티나로 이동한다. 여행 경로에서 대체로 순서대로 놓여있는 푸콘과 바릴로체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도시이다. 칠레의 화산도시 푸콘이 칠레 최대의 신혼여행지이자 레저 스포츠 도시라면, 아르헨티나의 호수도시 바릴로체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신혼여행지이자 레저 스포츠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다수의 해변(? 농담이 아니라 호수가의 모래밭에는 ‘해변 Playa’라는 이름이 붙어있다)을 거느리고 있어 바다라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거대한 나우엘 우아피 호수 Lago Nahuel Huapi와, 남미 뿐만 아니라 남반구 최대 스키 슬로프 (총 120 km)를 갖춘 쎄로 카테드랄 Cerro Catedral 덕분에 바릴로체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휴양 도시가 되었다.
누가 여기를 호수라고 생각할까...
미니밴을 타고 바릴로체 도심에 들어서자 나우엘 우아피 호수의 거대하고 짙푸른 물빛이 눈에 들어온다. ‘나우엘 우아피’라는 이름은 ’재규어의 섬’이란 뜻의 마푸체 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호수와 바릴로체, 그리고 바릴로체 주변에 위치한 여러 호수와 산이 나우엘 우아피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Nahuel Huapi 에 속해 있다.
나우엘 우아피 국립공원은 아르헨티나 최초의 국립공원이며, 지금은 두 번째이지만 한때는 가장 큰 국립공원이기도 했다. 원래 이 지역은 유명한 파타고니아 탐험가 프란시스코 모레노 Francisco Moreno가 탐험 도중 도달한 지역으로, 프란시스코 모레노 소유지 중 하나였다. 1900년대 초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이 지역을 국가에 기증하였고, 1930년대에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아르헨티나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3번째로 본격적인 국립공원 시스템을 갖추게 되면서 이과수 폭포 지역과 함께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런 유서 깊은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근처 7개 호수를 차로 여행하는 일명 ‘세븐 레이크 투어 7 Lakes Tour’는 남부 지역과는 또 다른 북부 지역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여유있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빙하에 남긴 탐험가 프란시스코 모레노의 유해는
자신이 기증했던 나우엘 우아피 호수의 작은 섬 이슬라 센티넬라 Isla Centinela에 남아있다.
푸에르토 블레스트로 향하는 배에서는 이 섬을 지날때마다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사이렌이 울린다.
(요 주소에 가면 잘 나온 사진을 볼 수 있다: https://www.patagonia.com.ar/album-fotos/774+Tumba+y+Bandera.html)
바릴로체 도심과 나우엘 우아피 호수의 모습은 가까이서 보아도, 조금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1004 호텔’로 불리우는 오스페다헤 펜트하우스 1004 Hospedaje Penthouse 1004에 숙박하는 것이다. 한국어 ’천사’를 염두에 두고 지어진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1996년부터 바릴로체 중심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꼭대기 층 ‘1004호’의 방을 관광객들에게 빌려주게 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같은 층의 근처 다른 집들도 숙박시설로 개조하여 본격적인 숙박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객실 창문을 통해 내려다 보이는 나우엘 우아피 호수와 도시 중심지의 아름다운 모습 뿐만 아니라, 호텔이나 리조트가 많은 바릴로체에서 상대적으로 숙박비가 저렴한 탓에 정말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뒤쪽에 보이는 고층 아파트가 바로 오스페다헤 펜트하우스 1004
쎄로 캄파나리오 Cerro Campanario 전망대를 방문한다면 좀 더 멀찍이서 도심과 주변 호수들을 감상할 수 있다.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대략 1시간 정도 등산을 하면 올라갈 수 있는 곳인데, 쉬는 구간 없이 거의 모든 구간이 경사로여서 생각보다 난코스이다. ‘설마 이정도겠어?’ 하고 방심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서, 파타고니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트레킹 코스라는 우스겟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 난이도 탓인지는 몰라도 이곳 전망대는 리프트를 타고 편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 다만 비용은 15000원 정도로 꽤 비싼 편이다.
쎄로 캄파나리오에 올라가면, 바릴로체와 바릴로체를 둘러싼 수 많은 호수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바릴로체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샤오샤오 호텔 Llao Llao (야오야오, 라오라오가 아님)도 보인다. 바릴로체 대성당의 설계자이기도 한 아르헨티나 유명 건축가 알레한드로 부스티요 Alejandro Bustillo가 디자인하여 1930년대 말 도심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안데스 산맥 기슭에 건설된 샤오샤오 호텔은 한동안 재정문제로 문을 닫았다가 1990년대에 다시 재개장하여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최고급 호텔이다.
야오야오가 아니다. 샤오샤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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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바릴로체와 바릴로체 근교의 사진들을 모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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