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평화의 도시로 부터 따뜻한 포옹을 받은 다음 날,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를 질주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카미노 데 라 무에르테 Camino de la Muerte, 영어로는 데스 로드 Death Road, 혹은 슬로터 앨리 Slaughter Alley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은 융가스 도로 Camino a Los Yungas는 본래 융가스 지역의 거점도시인 코로이코 Coroico와 라 파스를 연결하기 위해 지어졌다. '따뜻한 지역'이란 뜻을 가진 융가스는 볼리비아 아마존과 안데스 고산지대 사이에 형성된 좁고 긴 열대우림지역으로, 해발 고도 5천미터를 넘나드는 안데스 산맥의 차가운 풍경과 열대우림의 후텁지근한 풍경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최초에 이곳은 1930년대에 파라과이와 볼리비아가 차코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벌인 차코 전쟁 Guerra del Chaco 당시, 볼리비아로 끌려온 파라과이 전쟁 포로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건설 도중에는 건설에 투입된 많은 포로들이 사망했고, 건설후에는 도로를 다니던 많은 볼리비아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험준한 고산지대와 정글지대를 통과하는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에서 조금만 실수해도 100m 낭떨어지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1995년 당시 융가스 도로 현대화 관련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던 IADB (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는 융가스 도로를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이며, 두어주에 한 번 꼴로 발생하는 심각한 사고로 인해 매년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아마존하면 브라질이 떠오를 정도로 대부분의 아마존 지역이 브라질에 속해있지만, 페루와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같은 인근 국가들에도 아마존이 속해있다. 라 파스 인근의 루레나바케 Rurrenabaque는 아마존을 경험해볼 수 있는 볼리비아의 대표적인 도시로, 가성비 좋은 아마존 투어로 잘 알려져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mazon_basin)
루레나바케 투어 사진 및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XPsX3uuXel4)
한창 교통로로 사용되던 당시의 사진. 정말 어떻게 다녔을까 싶다...
(출처: http://dondeviajar.republica.com/experiencias/camino-de-los-yungas-o-la-carretera-de-la-muerte.html, https://www.20minutos.es/fotos/estilo-de-vida/las-carreteras-mas-peligrosas-del-mundo-13076/1/)
그런데 서방세계에 공개된 이 조사 결과는 전세계 젊은이들의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했다. 1998년 뉴질랜드 출신의 알리스테어 매튜 Alistair Matthew에 의해 데스로드 자전거 투어가 처음 시작되었고 2006년 융가스 도로 현대화 작업이 완료되어 코로이코와 라 파스를 연결하는 안전한 포장 도로가 개통되자, 데스 로드에서의 사망자 명단은 라 파스를 방문하는 전세계 여행객들의 차지가 되었다. 매년 2~3만명의 관광객이 이곳 도로를 자전거로 질주하고 있으며, 여전히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사고 시 보험 처리와 사체 수습(!)의 어려움 탓에, 데스 로드는 현재 외교부에서 방문 자제를 요청 중인 지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 외교부 홈페이지의 볼리비아 사건 사고에 등록되어 있는 내용
(출처: http://0404.go.kr/dev/country_view.mofa?idx=92)
이런 위험성 탓에, 처음 남미 여행을 계획할 당시에는 데스로드 투어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라 파스가 내 마지막 여정인 만큼 다른 도시보다는 안전하고 조용히 머물다 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행이 된 형들의 강력한 추천과 (끊을 수 없는 이놈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투어에따라 나서게 되었다. 투어 계약서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나는 사무실 직원에게 ‘데스 로드’씩이나 달려야 하는 투어가 진짜 안전한지 물어보았는데, ‘우리 회사가 진행하는 투어에는 어린애들도 참여할 정도로 특히 안전에 신경쓰니 걱정말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데스로드 투어의 인기가 상당한 탓에 투어를 진행하는 업체만 수십개가 되며, 이리저리 협상을 하다보면 가격면에서 회사별로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다보니 투어 완주 기념으로 업체마다 제공되는 티셔츠의 외형이 사람들 눈에 띄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였다. 다만, 실제로는 안전이 검증된 여행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조금 나가더라도 현지에서 추천해주는 안전하고 퀄리티가 보장된 업체, 그리고 사고 보험에 가입된 업체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 자전거 대여 시, 쇼바의 개수에 따라 자전거 대여료가 달라지는데, 쇼바가 많을 수록 몸에 전달되는 진동은 적지만, 자전거의 속도는 그만큼 느려진다고 한다. 참고로 비포장 길을 달리는 동안 손에 전달되는 진동이 어마무시하니 미리 각오를 해두는 것이 좋다. 나 같은 경우, 투어가 끝나고 한국에 도착해서도 며칠동안 손바닥에 통증이 남아있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고산지대의 풍광 한 가운데를 질주할 수 있는 기회이다.
자전거 주행 도중 또 한 가지 주의해야할 점은, 우측통행이 일반적인 보통의 볼리비아 도로들과는 달리, 융가스의 비포장 도로는 좌측통행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악명 높은 융가스 도로에서의 사고 예방을 위해 현지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규정이다. 산을 내려오는 방향으로 통행할때 운전자의 왼쪽에 절벽이 위치하고 있다. 차량의 좌측에 앉은 운전자가 좌측 절벽에 바짝 붙어 좌측 통행을 하면 우측 통행 때보다 훨씬 더 좋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차량의 좌측 바퀴와 절벽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좋고,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차량을 보다 빨리 발견할 수 있다. 절벽에 떨어지지않고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차량과 마주하면, 차를 세워서 반대쪽 차량을 먼저 통과시킨다. 이 규칙은 자전거 이용 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남미에서의 투어 대부분이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않았지만, 데스로드 투어 차량은 약속된 시간보다 무려 1시간 늦게 우리 일행을 데리러 왔다. 차량 탑승 후 간단한 인사와 신원확인을 진행하더니 가이드 중 한 명이 우리 일행에게 너네들 부자들이냐고 물어보았다. 우린 가난한 여행자들이라고 해명하는 동안, 이런 인식이 어쩌면 데스로드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볼리비아 사람들의 인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라 파스의 도심과 허름한 마을들을 지나 경사로를 달리는 미니밴의 바깥 풍경은 눈밭이 펼쳐진 익숙한 고산지대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몇 시간의 주행 끝에 융가스 도로의 가장 높은 지점인 고도 4650미터의 라 쿰브레 La Cumbre에 다다르면 본격적인 자전거 주행이 시작된다.
라 쿰브레 근처 공터에 내려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자전거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보호장구를 입어야 따뜻함을 느낄만큼 꽤 쌀쌀한 곳이다.
라 쿰브레에서 이어지는 최초의 포장 도로 구간을 하강하는 동안 라 파스 인근에 위치한 안데스 산맥의 절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이후 비포장 도로 구간을 통해 융가스의 정글 지대를 지나 코로이코에 도착하는 동안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잠시 체험할 수 있다. 중간중간 간식시간과 포토타임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 안전 요원이 끊임없이 관광객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함께 투어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큰 위기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열대우림 지역을 통과하는 도중에 찍은 사진. 정글의 무더위를 실감하고는 가이드의 허락 하에 옷을 벗었다. 볼리비아가 우리나라보다 적도와 더 가깝다는 걸 실감했다.
코로이코로 향하는 동안, 나무들 사이로 설치된 짚라인이 구불구불한 융가스 도로를 가로질러 쭉 뻗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로이코 인근의 코카 잎 재배자들이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죽음을 무릅쓰고 이런저런 물건들을 운반하는데 이용해온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짚라인도 운영하고 있는데, 코로이코 주민들의 중요한물자 이동 수단이던 융가스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내려온 것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융가스의 정글을 위태롭게 오고가던 코로이코 주민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코로이코 주민들이 이용하던 짚라인과 관광 상품화된 짚라인의 모습
(출처: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2105317/Bolivian-coca-farmers-fly-650ft-high-valleys-zip-lines.html, http://www.lapazlife.com/zipline-bolivia/)
자전거 투어 도중 쉬는 시간에 우리 일행이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게된 어느 외국인이 자기 여동생이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들도 케이팝을 듣는지 물어보았는데, 우리야 한국에 살고 있으니 듣지 않을 수 없다고 얘기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와 인근 일대를 가득 메운, 전세계에서 온 방탄소년단 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때 그 질문을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그 여동생분은 혹시 지금 방탄소년단에 열광하고 있으려나.
그렇게 수 시간의 자전거 주행 끝에 코로이코에 당도한 후, 다시 미니밴을 타고 라 파스로 돌아오면서, 나의 계획된 마지막 볼리비아 투어이자 남미 투어는 끝났다. 볼리비아, 라 파스, 그리고 한동안 함께 여행했던 형들과의 마지막 밤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볼리비아 맥주 ‘와리 Huari’와 함께하고싶었다. 와리를 구매하기 위해 라 파스 도심의 주류 판매소를 배회하다 간신히 와리와 파세냐 등 이런 저런 볼리비아 맥주들을 구매하고 기뻐하던 때가 생각난다.
사실 와리와 볼리비아 최고 인기 맥주인 파세냐 Paceña는 모두 CBN (Cervecería Boliviana Nacional)이란 이름의 맥주 회사에서 제조되고 있었다. 1877년, 안데스 산맥의 맑은 물과 라 파스의 높은 고도에서 형성된 필스너 맥주의 맛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된 (아마도 독일 이민자 출신의) 알레한드로 월프 Alejandro Wolf가, 자신의 이름을 따 Wolf & Cía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어 맥주를 판매하면서 CBN과 파세냐 맥주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한동안은 라 파스 이외 지역에서 라 파스에서 생산한 파세냐와 똑같은 맛을 재현할 수 없었으나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라 파스 이외 지역에서도 라 파스와 유사한 기후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져 파세냐의 대량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한다. 덕분에 1877년 CBN의 설립과 함께 출시된 파세냐는 지금껏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CBN은 파세냐와 함께 ‘와리’, ‘두칼’, ‘복’ 등의 맥주를 생산하여 볼리비아 맥주 시장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130여년 전통의 파세냐. 오랜 역사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출처: https://www.cbn.bo/nuestras-marcas/pacena/)
라 파스 아사나케스 산맥 Serranías de Azanaques의 깨끗한 물로 만들었다는 와리는 천 년간 이어져 온 전통적인 독일 맥주 제조법과 볼리비아의 고급 재료로 만든 프리미엄 맥주이다.
총 4가지 종류의 와리가 있으며, 프리미엄 맥주 답게 각각에 대한 특징과 페어링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전통적인 와리 Huari Tradicional:
조상 대대로 내려져 오는 제조법을 통해, 선택된 몰트와 훌륭한 홉, 그리고 아사나케스의 깨끗한 물로 제조. 균형잡힌 맛, 묵직한 느낌과 좋은 거품을 갖추면서도 마시기 쉬운 맥주. 적당한 쓴맛.
잘 어울리는 음식: 구운 고기, 양고기, 햄버거, 피자
꿀이 첨가된 와리 Huari con Miel:
전통적인 와리에 볼리비아 산지에서 수확한 자연산 벌꿀을 첨가하여 제조. 와리 본연의 맛에 꿀의 달콤함이 더해진 탁한 맥주. 좋은 묵직함과 균형잡힌 거품이 특징.
잘 어울리는 음식: 치즈, 야채, 셰비체
와리 앰버라거 Huari Roja:
와리의 전통적인 제조 기법에 볼리비아산 퀴노아 Quinoa를 비롯한 볼리비아 고산지대서 자라난 독특한 재료들을 첨가하여 제조. 중간 정도의 쓴맛이 입 안에 잠시 머문다. 약간의 달콤함과 산미가 느껴지며 끝맛이 부드럽다.
잘 어울리는 음식: 흰살 생선, 매운 맛, 달콤씁쓸한 맛
와리 흑맥주 Huari Negra:
전통적인 와리와 구은 몰트, 볼리비아 커피 아그로타케시 Agrotakesi의 섬세한 조화로 제조. 짙은 검은색을 띄는 와리 흑맥주는 와리 맥주만의 독특하고 색다른 커피 아로마에 구운 맛이 더해져 강렬한 인상을 준다.
잘 어울리는 음식: 돼지고기, 크림 파스타, 초콜렛, 훈제 음식
(출처: https://www.cbn.bo/nuestras-marcas/huari/)
산타 크루즈를 경유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하는 아침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페루로 넘어가기 위해 라 파스에서 좀 더 머물다 가기로 한 형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짐을 정리하여 밖을 나섰다. 숙소에서 미리 빌려놓은 택시에서는 우리 일행을 낄리낄리 전망대로 안내했던 택시 기사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엘 알토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그간의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팁을 넉넉히 쥐어드리고 밝게 작별 인사하였다. 공항 출입문에 들어서면서 안데스 고산지대의 특유의 쌀쌀한 여름 날씨와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아마소나스 항공만큼이나 악명 높은 볼리비아 항공 Boliviana de Aviación을 타고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소문처럼 기내 문이 덜 닫힌다든지, 문틈으로 바람이 샌다든지 하는 등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과자가 기내에서 제공되었다. 과자를 먹는 동안, 볼리비아에서 내게 도움을 주었던 많은 볼리비아 사람들의 바람대로 볼리비아가 끊임 없이 발전하길 기원했다. 볼리비아는 내가 지금껏 여행한 나라 중 가장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좋은 삶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 14. 라 파스, 끝.
아래는 데스로드 투어 도중 투어사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 자료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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