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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Patagonia, and more

14. 라 파스 La Paz (1)

 

관광 버스만한 크기의 아마소나스 Amazonas 항공기 속에서 보낸 40분의 시간은, 비행기를 타면서 경험해본 가장  공포였다. 이륙 직후부터 착륙 직전까지, 비행기는 쉬지않고 요란하게 흔들렸고, 작은 비행기가 기류에 의한 흔들림에  취약하다는 얘기를 몸소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게 위태롭게 날아가던 날개달린 관광 버스는 우리 일행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제 공항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상업 공항인  알토 국제공항 Aeropuerto Internacional El Alto 데려다 주었다. 공항이 위치한  알토 El Alto  파스 La Paz 서쪽에 인접한 근교 도시로써, ‘높음 뜻하는 '알토 Alto'란 이름에 걸맞게 평균 고도가 4150m 이른다.  알토보다는 조금 낮다고 해도 평균 고도가 3200m 이르는  파스와 함께,  파스 -  알토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권이다

 

엘 알토 공항 상공에서 찍은 사진. 저 멀리 보이는 경계선 아래로 절벽을 따라 내려가면 라 파스가 있다. 

 

바다를 잃은 볼리비아 해군의 해상 훈련지로 사용된다는 티티카카 호수 Lago Titikaka 동쪽에 위치한  파스는  파스 이라고도 불리우는 초케야푸  Rio Choqueyapu에 의해 형성된 협곡 사이에 움푹 파인, 고도가 3000m가 넘지만 그래도 주변 지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형성된 도시이다. 고산지대의 특징상 고도가 조금이라도 낮을 수록 사람이 살기에 좋았던 탓에, 인근에서 고도가 가장 낮고 평탄한 지역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살게 되었고, 고도가 높고 지형이 험준한 지역에는 빈곤한 이들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안데스에 위치한 탓에 라 파스 주변에는 고산지대의 높은 산들이 즐비하다. 오루로의 사하마 산 Nevado Sajama에 이어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자 ‘라 파스의 수호자 Guardian de La Paz’로 불리우는 이이마니 산 Nevado de Illimani의 눈 덮인 봉우리 3개의 모습은 라 파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젋은 언덕'이란 뜻을 지닌 와이나 포토시 Huayna Potosí는 라 파스에서 접근성이 좋고, 6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지만 상대적으로 등반이 쉽다고 알려져 있어 볼리비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산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 밖에도 각각 볼리비아에서 3번째, 4번째로 높은 산인 안코우마 Ancohuma와 이얌푸 Illampu, 이이마니 산의 시기를 받아 뾰족한 봉우리가 잘려나갔다는 전설이 있는 무루라타 Mururata도 라 파스의 근교에 위치해있다.

 

시기심이 많은 이이마니 산의 모습

(출처: https://es.wikipedia.org/wiki/Illimani)

 

높은 고도에 형성된 도시인 탓에, 라 파스와 인근 지역에 위치한 각종 시설들은 높이와 관련된 다양한 기록을 갖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라 파스 지역은 가장 높은 수도권이자 가장 높은 국제 공항이 위치한 곳이며, 가장 높은 피파 공인 축구 경기장인 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Estadio Hernando Siles가 자리잡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가뭄과 엘니뇨의 영향으로 차칼타야 Chacaltaya 산의 빙하가 사라지기 전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키장과 레스토랑도 이곳에 있었다.

 

폐허가 된 차칼타야의 모습. 사라진 차칼타야의 빙하를 시작으로, 적도와 가까운 안데스 고산지대의 많은 빙하가 수십년 안에 사라질 것이며, 빙하가 주요 식수원이던 라 파스 지역이 현재 겪고 있는 물 부족 현상이 안데스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더욱 심화될 것이란 안타까운 전망이 있다.

(출처: https://www.snow-forecast.com/whiteroom/chacaltaya-bolivia-worlds-highest-ski-resort/)

 

최초의 페루 총독(Viceroy) 블라스코 누녜스 벨라 Blasco Núñez Vela 곤살로 피사로 Gonzalo Pizarro  그를 따르던 정복군 무리들의 반란을 잠재운 , 평화를 수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지역에 평화의 성모 마리아 Nuestra Señora de La Paz (네스트라 세뇨라   파스)’라는 정식명칭을 부여했다. 기다란 명칭 가운데서 평화 뜻하는  파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곳은 사실 공식적으로는 수도가 아니다.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는 볼리비아 남부의 중심 도시 수크레 Sucre이다. 수크레는  파스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  최초로 독립 운동이시작된 곳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늦게 독립을 쟁취한 볼리비아는 독립의 발상지였던 이곳을, 독립을 주도했던 안토니오 호세  수크레 Antonio José de Sucre 이름을 붙여 수도로 정했고, 한때 페루 상부(Upper Peru) 의미의 알토 페루 Alto Peru’ 불리우던 지역은 수크레의 부관이자 친구로써 독립에  도움을   남미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 Simón Bolívar 이름을 빌려 볼리비아라는 국가명을 갖게 되었다.

시몬 볼리바르의 모습. 그는 거의 왠만한 남미 국가들의 역사책에 이름을 올렸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im%C3%B3n_Bol%C3%ADvar)

 

독립 이후, (아타카마 편에서 언급했던) 태평양 전쟁을 포함해 여러 복잡한 전쟁에 휘말리며 끊임없이 영토를 빼앗겨온 볼리비아 보수 정권은 전세계적인  가격의 상승 덕분에 안정기에 돌입할  있었고, 그러다보니 정권은 자연스레 수크레와 인근 도시 포토시 Potosí  채굴업자와 대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 그러다 주석 채굴지로 유명한  파스 인근 오루로 Oruro 지역의 교통망이 발달하고 유럽  주석 채굴이 줄면서 볼리비아 주석의 채산성이 급격히 높아져 매장량이 점차 줄어들던 은의 채산성을 추월하게 된다. 주석 채굴업자들이 몰려있던  파스와 인근 도시에 돈이 몰리게 되고, 이들의 지원을 받던 자유당 Partido Liberal 힘은 결국 수크레와 포토시의 지원을 받던 보수 정권을 넘어서게 된다. 자유당은 연방주의와 지방 분권 제도에 대한 요구를 등에 업고 보수 정권을 전복시킨 , 대법원과 같은 헌법적인 기능은 수크레에 남겨두고 대통령궁인 팔라시아케마도 Palacio Quemado 비롯한 각종 정부기관들을  파스로 이전시킴으로써  파스를 사실상의 행정 수도 (de facto national capital)’ 만들었다. 이후, 볼리비아의 국가명을 ‘Republic of Bolívar (볼리비아 공화국)’에서 ‘Plurinational State of Bolivia (볼리비아 다민족 국가)’ 변경하며 인종차별 완화를 꽤하던 2009 헌법 개정 당시,  파스의 행정기능을 수크레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고 정치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정부와 의회의 견해에 막혀 실현되지 못했다.

 

라 파스 - 엘 알토 고속도로와 모랄레스 대통령의 선전 간판

(출처: https://laradiodelsur.com.ve/presidente-morales-inauguro-moderna-autopista-la-paz-el-alto-reconstruida-despues-de-40-anos/)

 

이러한 역사를 겪어오며  파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행정 수도이자 볼리비아의 정치  경제 변화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숙소로 향하기 위해,  알토 공항을 출발해  파스 -  알토 고속도로 Autopista La Paz - El Alto 지나오는 동안 한쪽 벽이 무너져 내린 건물들과공사 현장들 만큼이나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도로 곳곳에 배치된 모랄레스 대통령의 사진과 모랄레스 정권의 업적에 대한 선전이었다. 1825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한 이래 200 가까운 시간동안 전쟁과 쿠데타, 군사 독재와  많은 시위가 반복되면서 200 가까이 정권 전복을 겪어온 볼리비아는, 2006 집권 이후 줄곧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정권을 유지해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 대통령의 통치 이후 정치적인 안정과 급격한 경제 성장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간의 재임 기간 동안 볼리비아는평균 5% 고성장을 기록하며 남미 최빈국의 지위를 벗어났고, 작년에도 남미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을 정치적 이상으로 삼아온 모랄레스는 자원 개발을 포함해, 외국 기업이 장악해온 다양한 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진행해왔고, 특히나 코칼레로 Cocalero (코카  농부) 출신으로써 코카  농업을 지지해왔다. 이런 그의 업적 대해, 대체적으로 서방 세계의 평가는  박한 편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모랄레스 대통령을 급진적인 좌파이자 마약거래상과 테러리스트의 파트너라며 맹렬히 비난한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전통적인 급진 좌파들 사이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인디오 얼굴을  자본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달리, 모랄레스는 외국 기업에 대한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볼리비아  자본가들의 경제적 지위가 유지될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기존 주류 정치 세력 사이에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난을 받고 있는 그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유지할  있는 기반은 국민적인 높은 지지율이 아닐까 싶다. 재임 기간동안 수많은 투표를 치뤄왔으며, 개중에는 그의 정치 생명을 좌우할 만한 건수도  있었다. 그렇게정치적 위기를 겪을 때마다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힘은 위기를 극복케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가 이렇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있는 가장  비결로, 전문가들은 재임기간동안 급격히 줄어든 최빈층과 빈곤층 비율에 대해 언급한다. 이미 충분한 부를 축적해왔으며 지난 정권들의 수혜를 받아온 산타 크루스 Santa Cruz 지역의 백인 부자들의 지위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국유화를 통해 확보한 일자리와 세수를 빈공층의 웰빙을 위한 최소 복지 - 영유아 건강검진  예방 접종, 의료, 교육, 각종 시설 인프라 확충, 연금 제도 정착  확대, 최저 임금 상향, 인플레이션 통제 - 집중 투자하였다. 동시에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임금 삭감과 기득권의 부정부패 척결하고자 했으며, 지방 자치제를 확립하고 대화를 통해 국민 분열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는등 정치의 현대화와 상식화를 위해 노력했다. 자신을 사회/경제 엘리트와 소외 계층의 갈등을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간자의 역할로 국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모습 덕분에, 그와 친분이 있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나 브라질의 룰라와 같은 남미의 대표적 극좌파 정치인들보다  오랜 기간 동안  좋은 평가를 받으며 대통령 직을 유지할  있게  것은 아닌가 싶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첫 임기 당시의 모습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Evo_Morales)

 

다만 그런 모랄레스에게, 대통령 4 출마가 가능하도록 헌법을 수정하기 위한 개헌안 국민 투표의 패배를 안겨주어 4 출마를 장담할  없게  결정적 계기가  스캔들이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와  과정에서 벌어진 부정 부패 논란이라는 사실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볼리비아 정부가 인프라 시설 구축을 위해 CAMC라는 중국 회사와 5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게 되는데, CAMC 볼리비아 정부와의 계약을 따내기 위해 가브리엘라 사파타 Gabriela Zapata 라는 친정부 성향의 볼리비아 여성 기업인을 고위직에 앉혔다. 그런데 사파타가 단순한 친정부 인사가 아니라, 대통령 임기 전부터 모랄레스 대통령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으며,  사이에는 아이까지 존재한다는 보도가 개헌안 국민 투표 직전에 방송된다. 이후 그녀는 아이의 생존 사실과 이로 인해 대통령으로 부터 받은 정신적 학대에 대해 폭로하면서, 볼리비아 사상  인디오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부패한 인간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사파타와 모랄레스가 함께 있는 사진. 최초에 모랄레스는 그녀의 아이가 죽은 이후 그녀를 본적이 없다고 하였다가 2014년에 찍힌 위 사진이 SNS를 통해 공개된 후 그녀와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발언을 바꾸었다.

(출처: https://www.noticiasfides.com/nacional/politica/la-telenovela-del-ano-estuvo-protagonizada-por-evo-morales-y-gabriela-zapata--373516)

 

카소 사파타 Caso Zapata 불리우는  스캔들은 각종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는데, CAMC와의 계약건은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졌으며, 모랄레스의 장기집권을 원치 않던 반대 세력의 사주 - CIA 보도를 위한 소스를 제공했다는 루머가 있는데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를 비롯, 미국 정부가남미 정치에 개입한 사례는 흔하디 흔하다 -  받은 사파타와 일부 언론이 모랄레스의 연임을 막기 위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사파타가 그동안 대통령 내각 구성원 일부와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실도 밝혀지면서 대통령의  여자친구와  내각 구성원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에게 실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볼리비아 최고 재판소는 모든 공직은 임기 제한을 두지 않는다라는 판결을 통해 모랄레스의 4 출마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선고했다.

 

하지만 최고 재판소의 판결이 스캔들로 인해 선거에서 패배한 것에 대한 보상 판결이자 정부 기관의 친정권적인 법리 해석이라는 비난과, 대통령 측근이 직접 연류된 부정부패가 존재한다는 사실, 스캔들 이후 언론 탄압을 위한 것으로 의심되는 법안이 발의되는 과정을 겪으며 모랄레스의 장기집권이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비록 4 출마에 대한 유권 해석이 나왔고 그간의 추악한 모략이 사실로 밝혀졌지만, 모랄레스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임기에 대한 규정을 준수하고, 정부 여당인 MAS 모랄레스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써 새로 선출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길 바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고, 국제재판소에서 볼리비아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모랄레스 정권의 아타카마 지역에 대한 볼리비아의 영유권 수복을 위해 일해  전직 대통령 카를로스 메사 Carlos Mesa 소수 개혁 좌파 정당들의 단일 후보로 등장하여, 모랄레스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작년 12월에 발표된 대통령 선거 후보자 예상 지지율에서는 메사가 모랄레스를 앞서고 했다.

 

결선 투표까지 갈 경우, 카를로스 메사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출처: https://www.paginasiete.bo/nacional/2018/12/2/mesa-agranda-su-ventaja-sobre-morales-en-eventual-balotaje-201878.html)

 

카를로스 메사 (좌측)와 에보 모랄레스의 모습. 지난달 , 최고 선거 재판소 Supreme Electoral Court 판결에 의해 법적으로 대통령 선거 후보자가  모랄레스가 4선에 성공할지 여부는 1 27 투표로 결정된다.

(출처: https://www.cooperativa.cl/noticias/mundo/bolivia/evo-morales/carlos-mesa-confirmo-candidatura-presidencial-evo-morales-es-parte-del/2018-10-06/133605.html)

 

모랄레스 정권의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논란거리는 역시 코카  재배 문제이다. 불법적인 코카인 유통을 막기 위해 코카인의 제조 자체만을 근절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과, 현실적으로 코카인의 제조 자체만을 근절시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코카인의 재료인 코카 잎의 생산 자체를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금도 국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방 세계의 주장대로 코카 산업을 근절시킴으로써 서방 세계와의 갈등을 수습하고 그들로부터 경제적인 이득을 유도하려던 이전 정권들과는 달리, 모랄레스 정권은 코카 산업을 국가 경제의 근간  하나로 여기고, 코카 산업으로 부터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했다. 코카 산업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볼리비아 내에서 종교적, 의학적 용도로만 코카를 재배하고 있음을 전세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코카 재배의 합법성을 강조하기 위해 농장별 코카 생산량 제한, 코카인 제조 금지,코카인 제조업자와의 거래 금지  코카 밀매업자 신고 등의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코카 농장 산업이 성행하게  대에는 미국내 코카인 수요 증가에 따른 코카  거래량 증가와 그로 인한 코카 가격 상승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모랄레스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여 코카 농장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정치계에까지 입문하게 되었다는 , 그리고 모랄레스 정권이 비민주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 부패한  행정부 고위층이 코카  불법 유통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모랄레스 정권의 공개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수의 코카 잎이 코카인 제조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정적으로 볼리비아는 법적으로 소량의 코카인 소지를 허용해주고 있는데, 허용 중인 몇몇 국가들에 비해 허용량 또한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런 탓에, 지금도 볼리비아는 코카인 합법국이란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서방 세계 국민들 사이에서는 볼리비아 여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하기도 한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방문하는 많은 유럽인들이 칠레를 통해 우유니 소금사막을 방문한  볼리비아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칠레로 돌아가는 3 4 투어를 선택하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앞서 우유니 2 3 투어에서 코카 잎을 질겅질겅 씹었던 이야기를 했었는데, 코카 잎에서는 1% 남짓한 코카인을 추출할  있지만 코카 잎을 씹는 것으로는 코카인에 중독되지 않는다고 알려져있다. 천원이면 작은 비닐 봉지 가득 코카 잎을 구매할  있지만,  값싼 코카 잎에서 부유한 백인들에게는 일탈의 상징이라고 불리우는  비싼 코카인이 생산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흡입하던 하얀 가루이자, 셜록 홈즈가 추리를 위해 직접 체내에 주입하던 약물인 코카인은 원료인 코카 잎이 남미 안데스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되고, 음성적으로 키우기엔 코카 나무의 크기가   , 그리고 이를 미국과 같은 소비지까지 운반하는데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코카인의 단가를 급격히 높였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코카인을 참 많이 흡입하는 영화였다.

(출처: http://thelistlove.com/10-amazing-facts-about-the-wolf-of-wall-street/)

 

합법적인 코카  제품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상품은 코카 콜라이다. ‘코카 콜라라는 이름부터 코카 잎과 콜라나무의 합성어이며, 코카 콜라의 약어인 코크 Coke 코카인의 속어로도 쓰인다. 와인에 코카인을 섞어 만드는  마리아니 Vin Mariani 팔아오던 미국의 약사 J. S. 펨버턴Pemberton 금주법으로 생산이 어려워진  마리아니를 대신해, 와인 대신 탄산수와 콜라 나무 껍질의 원액을 섞어 자신의 약국에서 팔던 것이 코카콜라 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코카인이 국제적 문제가  이후, 최근에는 코카 잎을 삶아 의료기관용 코카인 성분을 추출한 , 다시 수차례 착즙을 반복하여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코카인 성분을 최대한 제거한  코카 콜라 생산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코카콜라에는 성분 표기를 하지 않아도  정도로 매우 극소량의 코카인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코카 콜라 병모양의 변천사. 가장 왼쪽의 병이 J. S. 펨버턴이 실제로 사용한 형태라고 한다.

(출처: https://www.clintonfoundation.org/get-involved/take-action/attend-an-event/coca-cola-american-original)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통과하던 차가 시내처럼 보이는 지역에 돌입하자 이내 교통 체증 속에 갇혀 버렸고, 힘겹게 정체 구간을 통과하고 나서야 시내 끝자락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할  있었다. 짐을 풀고난 , 다음날 형들과 함께 참여하기로  투어 예약을 위해 서둘러  밖을 나섰다. 숙소 직원이 추천해준 투어 사무실을 찾아가기 위해  파스 시내를 걸어다니면서  파스의 심각한 대기 오염을 체감할  있었다. 몇몇 여행자들에 의해  파스는 체감상 세계 최악의 대기 오염 도시로 지적받아왔는데, 그것을 충분히 실감할  있었다. 사실 수치상으로는 대기오염 최악의 도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의 도시들에 비해 공기가 깨끗한 편이지만,  파스가 위치한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 탓에 호흡이 어려운 탓에 체감을 더욱 안좋게 만드는듯 하다

  

투어 몇군데를 돌아다니다 가장 평이 좋고 가격이 괜찮은 곳을 찾아 투어 계약을 진행했다. 투어 관련 서류를 작성하던 도중, 코카인에 취한듯한 사람이 사무실에 난입했다. 당황한 직원이 스페인어를 빠르게 내뱉으며 난입한 사람을 간신히 쫓아내고 우리 일행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직원을 안심시키기 위해 우린 괜찮다고 답하긴 했지만,  파스 도심의 치안 수준에 대한 불안함과 경계심을 갖게된 계기가 되었다. 숙소 로비를 지키던 친절한 볼리비아 청년은 언제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위험 수준이 달라지며, 위험한 곳에서는 납치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며, 우리에게 강력히 주의를 주기도 했다.

 

약간의 사건 사고를 겪으며 투어 계약을 마무리하는 동안 사무실 바깥의 해는 서서히 안데스 산맥 너머로 점점 사라지면서, 그 유명한 라 파스의 야경을   있는 기회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파스의 야경을   있는 가장  알려진 방법은 크게 2가지이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가 조그만하게 펼쳐져 있는 도심을 내려다 보듯,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알토 지역에 올라가  파스 지역을 내려다 보는 것과,  파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낄리낄리 전망대에 올라가 전망대 주위로 펼쳐진  파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침 투어 사무실과  알토로 향하는 케이블  정거장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았고,  파스의 석양을 보며 케이블 카를 타기 위해 서둘러 정거장으로 향했다.

 

미 테레페리코의 모습. 겉보기엔 영락없는 관광지 케이블카이지만, 라 파스에서는 무려 환승도 가능한 대중교통의 핵심이다.

 

나의 케이블  의미하는  테레페리코 Mi Teleférico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관광 목적의 케이블 카가 아니라  파스 -  알토 지역 주민들이 애용하는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알토와  파스는 지도 상으로는 굉장히 인접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400미터 높이의 절벽을 가운데 탓에 서로간의 왕래가 불편했다. 이로 인해  지역을 오고가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했을  아니라,  사이의 부족한 교통망은 끔찍한 교통대란을 야기했으며,  과정에서 환경과 공기 오염이 점점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도시 확장의 측면에서도, 이미 과포화 상태인  파스의 오래된 도심 지역과, 빈민가에서 신도심으로 빠르게 성장 중인  알토의 근교 지역을 연결하여  파스 지역의 밀도를  알토로 분산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테레페리코 시스템 구축의 최초 의도는  지역을 갈라놓은 절벽 위로 케이블 카를 설치하여  지역을 빠르게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부터 계획된  프로젝트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용, 승객 수용능력, 정거장 건설하기 위한 부지 확보 등에 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급기야  파스의 가장 일반적인 대중교통 수단인 미니버스 기사들의 생계 위협 문제가 불거지며, 기존의 체계를 거스르는 급진적인 정책이  그러하듯 계획이 좌초될 위기를 맞았다

 

 알토의  세하 La Ceja  파스 도심의 플라사  산 프란시스코 Plaza de San Francisco 이어주는 하나의  케이블 노선을 만들려던 기존의 계획은 확실히 효율성이 떨어졌다. 협곡 사이에 밀집되어 있던  파스 도심과 달리  알토는 고지대에 넓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거점축으로  알토와  파스를 효율적으로 연결한다는  그리 논리적인 방안이 아니었다. 플라사  산프란시스코 근처에 정거장을 지을만한 땅을 확보하는  또한 현실성이 떨어지는 계획이었다. 이에,  파즈와  알토의 교통 거점을 선정한 , 이들을 연결할 여러 개의 케이블 노선을 만들고,거점과 인근 지역을 연결하는 미니버스를 운행하는, 새로운 교통 시스템을 설계하게 되었다. 케이블 카를 도시 교통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전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추진 중단 이후 10년이 지난 2003년이 되어서야 다시  테레페리코 프로젝트가 진척되기 시작했다. 케이블을 지지하기 위한 타워들의 설치 위치와  위치를 정리하는데 다시  년간의 논쟁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테레페리코 노선도와 유사한 형태가 점차 갖춰지기시작한다. 2011 최종적인 승차율 분석을 완료하고, 2012 모랄레스 대통령이 빨간색, 노란색, 녹색의 3 노선으로 구성된 케이블  대중 교통 시스템 법안을 볼리비아 의회에 입안하고 나서야  테레페리코는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석양과 함께 점점 사라져가던 도시의 허름한 풍경

상업 용도의 케이블 카와 곤돌라, 체어리프트 제조사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합작 회사 도플메이어 가라벤타 그룹 Doppelmayr Garaventa Group 시공을 담당하였고, 2014 5 30 빨간색 노선의 운행을 시작으로, 다양한 색상들의 노선이 하나씩 점점 추가되기에 이른다. 20191 기준 9 노선이 운행 중인  테레페리코에는 2개의 노선이 추가될 예정이며, 이중 하나는 올해 4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미 테레페리코는 작년 초부터 산악 지대에 위치한 오루로에서 관광 용도의 케이블 인 비르헨 델 소카본 Virgen del Socavón의 운행을 시작했으며, 또 다른 고산 지대이자 헌법상의 수도인 수크레에 새로운 케이블 카 교통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케이블  안에는  파스의 야경을 기대하는 우리 일행과 귀가 길에 오른 담담한 표정의  알토 주민들이 함께 있었다. 관광이 아닌 대중 교통을 목적으로 설치된 케이블 카를 타고 관광을 한다는 것은 이렇듯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알토에서 반짝이는  파스의 야경을 내려다 보았다. 한쪽 벽이 무너지고 창틀을 설치하지 못한 집들이 즐비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게 했던 도시의 아픔은 어둠에 가려지고, 별처럼 반짝이는 불빛만 남아있었다.

 

 

햇빛이 사라지고 불빛만이 남자, 도시에 대한 편견도 자취를 감춘다.

 

 

숙소로 복귀한 우리 일행들이 직원들에게  파스의 야경에 대해 얘기했더니 낄리낄리 전망대를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시간이  늦어지면 위험할  같아서,  늦어지기 전에 호스텔 소유의 택시를 타고 낄리낄리 전망대로 향했다. 택시 운전사 분의 안내와 보호를 받으며 전망대로 올라간 순간, 하늘에서 반짝이던 별들이 마치  파스의 협곡에 내려앉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장관이 펼쳐졌다. 우리 일행들을 안아주고 있던  많은 별들을 보며, 마치  파스가 겪어온 과거의 이야기들이 슬픔을 감추고 웃는 얼굴로 우리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파스에서 경험한 최초의 밤이자, 최초의 평화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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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파스 야경을 포함해, 라 파스 도심에서 찍은 사진들을 첨부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선이 정말 몇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