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유니 Uyuni (2)
우유니 2박 3일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어두운 새벽을 뚫고 북쪽으로 이동하여 우유니 소금 사막의 남부 지역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시작된다. 확신할 순 없지만 경로를 통해 유추해보건데 아마 우유니 당일 투어로는 방문하기에는 먼 위치였던 걸로 기억한다. 페드로는 우리 차량을 물이 가득찬 소금 사막 한 가운데까지 이동시켰다. 차에서 내려 처음으로 우유니 소금 사막에 발을 디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동이 트고 있던 하늘을 등지고, 하늘색과 보라색, 분홍색이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두 개의 똑같은 세상이 수평선으로 부터 갈라져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곧이어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하나의 태양이 둘이 되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해 뜨기 직전의 우유니 소금 사막
해가 뜬 직후의 모습.
눈으로 봐도 이렇게 굴곡없이 넓고 평평한데, 실제로는 인공위성의 거리 보정에도 이용할만큼 매우 평탄하다. 실제 바닥면의 높이 차이가 많아야 1m 밖에 되지 않는데다 그마저도 우기 때 채워지는 물로 인해 거의 평탄하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산업 시설이 없고, 해발 고도 또한 높은데다 건기에는 구름 한점 없고 맑은 날씨에 낮은 습도, 월 평균 1~3mm 밖에 안되는 낮은 강우량 덕분에 바다보다 5배 더 보정의 정확도가 높다고 한다.
우유니의 속살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겼다.
이런 거 하고 노는 곳이다...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하여
다시 차를 타고 가다보면 상대적으로 수면이 낮아 바닥이 드러난 지역이 나타난다. 자세히 보면 거북이 등껍질 자국이 보이기도 하는데, 수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 하얀 평원은 원근감을 잊게 만든다. 1~3월은 우기에 해당되며, 특히 우기에도 한 달에 5일 정도 밖에 비가 오지 않는 2~3월과 달리, 1월 강우량은 무려(?) 80mm에 이를 정도로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이 시기에는 유독 물이 가득 찬 소금 사막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겨울에 해당하는 6~8월은 건기로써 이 시기에 방문한다면 물이 차있는 모습보다는 이런 등껍질 자국을 흔히 볼 수 있다. 재밌는 사실은, 우기를 성수기로 소개하는 아시아권의 가이드북과는 달리, 외국 가이드북에서는 건기에 우유니 방문을 추천한다. 상대적으로 맑은 날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서구권에서는 우유니의 거북이 등껍질 자국이 우유니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지난 겨울 개봉했던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Star Wars: The Last Jedi’에서도 바닥을 드러낸 우유니의 하얀 표면이 의미 있는 미장센을 만들어냈다.
(출처: https://awol.junkee.com/star-wars-last-jedi-filming-locations/56209)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마지막 전투 장면은 실제로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출처: https://www.starwarsnewsnet.com/2017/04/the-last-jedi-behind-the-scenes-photos-of-crait-theories-and-speculation.html)
우유니 소금 사막에는 소금과 리튬, 칼륨과 마그네슘을 포함해 많은 광물 자원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특히 리튬의 경우, 지금까지 알려진 전세계 리튬 매장량의 40% 이상이 우유니 소금 사막 지역과 이를 포함한 볼리비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렇게 광물이 잔뜩 포함된 염해로 온통 뒤덮여 토양으로 이뤄진 육지마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가 선인장이다. 우유니 소금 사막에는 33개의 섬이 존재하는데, 이들 섬을 매우고 있는 식물은 대체로 선인장이다. 특히, 우유니 소금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이슬라 잉카와시 Isla Incahuasi는 선인장 섬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섬을 산책하다보면 특이한 산호 구조물과 십미터가 넘는 선인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으며, 특히 우기에는 선인장 사이에서 피어난 예쁜 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아주 오래전 이곳은 화산 꼭대기였으며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우유니 소금 사막이 형성될 때 섬이 되었다. ‘잉카 집’을 뜻하는 이곳 섬의 이름처럼, 이곳은 우유니 소금 사막 지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동식물들과 관광객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선인장이 빼곡히 자라있던 우유니의 대표적인 섬, 잉카와시 섬.
1월말 2월 초에는 이렇게 꽃이 피고 있거나, 피었던 흔적이 있는 선인장이 종종 있었다.
이곳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다카르 랠리를 위한 이정표가 있다.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출발해 세네갈 수도 다카르까지 경기가 진행되던 탓에 다카르 랠리란 이름이 붙었지만, 2007년 모리타니아에서의 프랑스인 테러로 촉발된 관광객 안전 문제로 대회가 취소되다 2009년부터 장소를 남미로 옮겨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다카르 랠리의 경기가 펼쳐지는 주요 지역 중 하나이다. 이정표 옆으로는 이보다 더 오래된 우유니 소금 사막의 상징인 무세오 데 살 Museo de Sal과 만국기가 있다. 우유니 관광객의 숫자를 상징한다는(?) 만국기에는 꽤 많은(?) 태극기가 걸려있는데 이것만 보아도 한국인들의 우유니 사랑을 알 수 있다. 만국기의 뒤편에 자리 잡은 무세오 데 살은 한국어로 소금 박물관이란 뜻인데, 원래 소금 궁전을 뜻하는 팔라시오 데 살 Palacio de Sal이란 이름의 소금 호텔이었다. 소금 사막 관광 중 휴식과 숙박이 가능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건설되었는데 샤워가 불가능하고 우유니 특유의 추위로 잠을 자기 어려운데다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우유니 소금 사막의 환경 파괴를 야기하면서 영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금 사막 바깥에 훨씬 더 그럴싸하고 제대로 된 소금 호텔을 짓게 되면서 지금 이곳은 박물관 겸 휴게소로 이용하고 있다. 신축한 소금 호텔은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월등히 좋아졌지만, 예나지금이나 소금으로 만들어진 탓에 벽을 핥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카르 랠리가 남미에서 진행된 것도 어느세 10년이 되었다.
소금 박물관 옆에있던 만국기. 태극기와 함께 사진을 찍어보자.
소금 박물관을 끝으로 우유니 소금 사막을 빠져나와 인근의 시장에서 기념품을 사고, 세멘테리오 데 트레네스 Cementerio de Trenes (열차 무덤) 을 방문해 길게 늘어선 채 산화되어 가는 녹슨 열차 무리들과 사진을 찍고 나면 우유니 투어가 끝난다. 투어사를 돌아다니며 우유니 투어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다 보면 투어사마다 우유니 소금 사막 안에서 미묘하게 다른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볼 것을 추천한다. 이정표가 없는데다 지반이 물러 바퀴가 빠지기도 하는 우유니 소금 사막 내부를 차로 돌아다니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데다 소금을 비롯한 각종 화학 성분으로 이뤄진 염해로 인해 차량에 심각한 손상을 야기하기 때문에 우유니 일출 때 우유니 바깥의 고지대에서 구경하거나 우유니 진입을 꺼리는 투어사도 있으며, 소금 사막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도 투어사마다 다르다. 소금 호텔 또한 한두가지가 아닌데, 투어사 마다 협약이 되어 있거나 투어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호텔이 따로 있는듯 했다. 게다가 우기(1~3월)에는 우유니 소금 사막에 물이 많이 차서 남쪽 방향에서의 진입이 어렵다는 핑계로 소금 호텔 대신 우유니 도심 한가운데에 숙소를 잡아 관광객들의 꿈과 희망을 파괴(?)하는 곳도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아마도 가이드의 운전 능력과 직업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즉, 적어도 우유니 소금 사막의 진입을 주저하는 투어사는 거를 것을 추천한다.
세멘테리오 데 트레네스. 멈춰 선 열차들이 서서히 소멸되어 가던 공간.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현지에서는 페드리또(스페인어에서 ‘-이또’는 작고 귀여운 늬앙스를 덧붙일 때 쓴다고 스위스 여대생이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스몰 큐트 페드로…)라고도 불리우던 페드로 아저씨는 풍기는 노련함에 걸맞게 모든 것에 능숙했다. 혼자서 차도 고치고, 요리조리 웅덩이를 피해 운전했으며 거침없이 소금 사막을 질주했다.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스위스 대학생 덕분에 투어 내내 답답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우유니에서 진행되는 많은 투어에서 영어 가이드를 전면에 내세운 곳이 많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볼리비아인 가이드가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양계 혼혈이 사장으로 있던 어느 여행사의 경우 가이드의 영어 사용이라든지 동양인들이 선호할 만한 요소를 내세워 투어를 홍보하기도 했다.
사실 2박 3일 투어에서 우리 일행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고산병이다. 현지에서는 소로체 Soroche라고도 불리우는 이 병의 근본적인 발병 원인은 장시간의 산소 결핍이다. 사람마다 심리 상태라든지, 타고난 정도에 따라 산소량에 대한 민감한 수준이 달라, 발병의 기준도 다르고 발병 시 증세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2000미터를 넘어갈때마다 호흡 부족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3000미터가 넘어가도 큰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해발고도 2400미터 이상 높이의 공기 중에 6~10시간 가량 머무르게 되면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있으며, 고도가 높아질 수록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즉, 잠깐 높은 고도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으로는 고산병 증세가 발생할 확률이 낮은데, 볼리비아와의 월드컵 예선을 위해, 브라질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산타 크루스(해발 400m)에 머물다가 경기 직전에 라 파스 La Paz의 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Estadio Hernando Siles(해발 3600m)에 가서 경기를 치루고 바로 복귀함으로써 고산병 증세에 의한 경기력 저하를 최소화 했고, 무려 0대 0으로 비기는 성과를 얻었다 (참고로 볼리비아는 지난 4번의 월드컵 예선동안 원정에서는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2무 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홈에서는 무려 14승 10무를 기록했다. 한때 피파는 선수들의 건강 문제를 이유로 ‘2500m’라는 경기장의 고도 제한 규정을 통해 라 파스에서의 A 매치 경기를 금지시키려고 했지만 볼리비아 정부를 중심으로 한 고산지역 국가들의 반대로 인해 고도 제한을 3000m로 높이고, 36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경기장의 경우 예외적으로 A 매치 경기를 허용하고 있다.)
원정팀의 무덤, 악명 높은 에르난도 실레스 경기장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Estadio_Hernando_Siles)
일반적은 고산병 증세는 숙취 현상과 꽤 유사하다. 가장 흔한 증상인 두통과 호흡 곤란은 투어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겪었으며, 그 밖에 식욕 부진, 수면 장애, 구토, 탈수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발생한 증상은 하루 이틀 정도 지속되다 고산지대의 산소량에 적응하게 되면 사라지지만 낮은 확률로 뇌부종이나 폐부종으로까지 발전하여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결국 이런 증상들은 산소량이 변화된 환경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고산병의 근본적인 치료 과정은 산소의 공급량을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소의 공급량을 직접적으로 늘리거나,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신체 작용을 돕는 방식을 사용한다. 산소호흡기를 통해 산소를 주입하거나 고도를 낮춰 공기 중 산소량을 늘리면 귀신같이(?) 몸이 멀쩡해진다고 알려져있다.
이뇨작용을 통해 체내 pH를 낮춰 호흡을 유도하는 방식도 많이 사용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물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부작용도 없고 안전하기 때문에 현지에서도 가장 권장하는 방법이다. 약물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약물은 주로 고산 지대 방문 이전부터 꾸준히 섭취할 것을 권장하며 고산병 치료를 위한 결코 결정적인 방법은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약물을 통한 이뇨 유발제로는 고산병 예방 및 치료 목적으로 복용하는 아세타졸아미드가 대표적인데, 다이아목스 Diamox란 이름으로 판매되는 이 약은 국내에서도 처방받을 수 있다. 어느정도 검증받은 약으로써 복용 방법 등이 꽤나 정량화되어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복용에 따른 부작용도 잘 알려진 약인데, 탄산음료의 쓴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고, 특히 손발과 뺨이 저리는 증세가 많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고산 증세가 심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약의 부작용을 겪느니 고산 증상을 버티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볼리비아에서 제조되어 안데스 지역 여행가들이 많이 복용하는 소로치 필 Sorojchi Pill은 일부 남미 여행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산병계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운다. 특히 아세타졸아미드에 비해 진통 효과가 빠르고 강하다고 알려져있는데, 소로체 필에 포함된 카페인과 아스피린 등의 성분이 혈류량 개선과 진통에 꽤 효과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일단 이 약에 포함된 카페인과 아스피린에 따른 부작용을 조심해야 하며, 이론상으론 혈류량 증가로 산소 운반량이 많아지면 저산소증이 예방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혈류량 개선을 통한 고산병 증상 개선 방식이 올바른지에 대한 의논의 여지가 있다. 이는, 혈류량 개선 효과가 있는 발기부전 치료제들을 고산병 치료 목적으로 복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도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하는 것 보다는 소로치 필을 복용하는 게 낫다.)
아마도 현지 약국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고산병 약, 소로치 필 (출처: https://www.sorojchipills.com/index.html)
약물이 아닌 기본적인 행동 양식을 통해서도 고산병 증세 호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호흡량이나 횟수를 늘리고 호흡 억제를 유발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둔다. 역시 평소처럼 잘 먹고 잘 지내는 것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중요한데, 물이나 음료수를 많이 마셔 이뇨작용을 촉진시켜 호흡을 유도하거나,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여 체내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시켜 빈 호흡을 늘임으로써 체내에 산소를 많이 공급할 수 있다. 먹어서 발생할 수 있는 빈 호흡이 아닌, 인위적인 빈 호흡도 고산병 증세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수면 중 산소 호흡량을 늘리기 위해 최대한 낮은 고도에서 잠을 잔다거나, 수면 중 호흡억제 작용을 할 수 있는 술과 수면제는 고산 지대 진입 며칠 전부터 복용을 중단하는 것도 고산병 증세 완화를 위해 중요하다.
이 밖에도 고산병 증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식물 성분을 섭취하는 방법도 많이 사용한다. 티벳 지역에서 주로 홍경천 성분의 약재를 복용하듯, 남미에서는 주로 코카잎을 씹거나 코카잎 차를 많이 마신다. 안데스의 고산지대 어디를 가든 코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나 역시 머리가 아플때마다 칠레 아타카마에서 구입한 코카잎을 껌처럼 씹었다. 페드로 아저씨 역시 고산병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코카잎을 조금씩 나눠주었다. 다만 이들 약재의 실질적인 고산병 증세에 대한 효과는 의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으며, 코카잎의 경우 코카인 함유량이 1% 미만으로 매우 낮기는 하지만 존재는 하기 때문에 소변 검사에 적발될 수도 있다고 한다(!)
고산병을 이겨내기 위해 코카잎을 씹는 것은 안데스 지방에서 수백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라고 한다. 고산병은 자주 걸린다고 내성이 생긴다든지 증세가 점차 완화된다든지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한 번 고산병을 겪은 사람은 다음에 고산지대에 와도 똑같이 고산병에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몸이 빨리 익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출처: https://www.bbc.com/news/world-latin-america-33312962)
마을 근처에서 자라고 있던 코카. 인근 지역에서는 코카로 만든 맥주도 팔고 있었다.
고산병을 이겨내기 위해 코카잎을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꿋꿋이 버텨낸 2박 3일이 너무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가끔 페드로 아저씨가 해주던 볼리비아 가정식(?)이 생각난다. 매번 특이한 밥과 고기 요리를 챙겨주셨는데, 그게 알고보니 키노아 Quinoa와 라마 Llama 고기였다. 특히나 라마 고기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음식이었는데, 처음엔 뭔지 모르고 맛나게 먹다가 그 모습을 흐믓하게 지켜보던 페드로 아저씨가 ‘그거 라마 고기야. 맛있지?’라고 말해버렸다. 이 얘길 들은 이후, 라마를 귀여워하던 캐나다 아주머니는 라마를 볼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라마는 너무 귀여운데 심지어 맛있기까지 해’
귀여운데 맛있기까지 하다는 라마 (철자상, 현지에서는 야마 Llama로 발음한다)
라마 고기의 맛을 알아버린 우리는 라마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페드리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는데 라마 고기와 달리 라마 우유는 너무 맛이 없어서 라마 새끼들만 먹는다는 사실과,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어릴때는 양과 같이 털실을 생산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다 고기 맛이 너무 떨어지는 4~5세가 되기 전에 도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수명이 최대 30년 이상으로 길고 1마리 가격이 100만원도 하지 않기 때문에 애완 라마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한 편으로는 2박 3일 투어가 진행된 볼리비아 남부 지역이 관광사업적인 측면에서 더 개발될 여지가 크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여행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곳이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한 가운데 위치한 올혼 섬이었는데, 아마 서구권 세력으로 부터 영향을 적게 받아 사업화가 덜 된 탓이 아닌가 싶다. 공교롭게도 두 지역을 포함한 국가들이 모두 흔히 말하는 서구권 국가들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데, 그로 인해 서구권 국가 사람들이 이들 국가에 머무는 것을 꺼려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 모두 여행 당시에도 계속 시설이라든지 새로운 투어 코스를 만들며 관광 산업 활성에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 글을 읽게 될 미래에는 이곳에서 내가 서술한 것보다 더 나은 2박 3일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우유니 도심에 도착한 후 며칠을 더 머물며 형들과 함께 다양한 우유니 투어에 참여했다. 투어사들이 모여있는 거리를 다니며 만난 관광객 대부분이 한국인과 일본인이었는데, 파타고니아 지역을 다녀온 나로써는 신기하고 어색한 풍경이었다. 또 한 가지 어색했던 것은 볼리비아의 물가였는데, 이전까지 여행하던 파타고니아의 물가가 유럽 뺨을 너끈히 가격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볼리비아의 물가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중남미의 물가 그 이하였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실컷 먹어도 돈이 부족할 일이 없었다. 바베큐 식당에 가서 회사 점심 값도 안되는 돈으로 바베큐를 주문하여 고기를 원없이 먹기도 했고, 볼리비아 가정식 식당을 방문하여 과자 한 봉지 값을 내고 볼리비아식 갈비탕을 먹기도 했다. 과일과 맥주도 많이 먹었는데, 특히나 여기서 먹은 ‘와리 Huari’란 맥주가 인상적이었다. 꼭 맛 때문은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칠레에서 맛보았던 아우스트랄 시리즈와 함께,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남미 맥주 중 하나이다.
관광객들로 가득한 작고 소박한 우유니 도심
이른바 남미식 갈비탕. 값도 저렴하고 맛도 좋았다.
우유니 지역에서의 투어를 마무리하고 나의 마지막 여행지인 라파스로 이동하기 위해 형들과 함께 우유니 공항으로 향했다. 게이트를 통과하여 활주로로 걸어나오자 엔진을 후미 근처에 달고 있는, 아마소나스 Amazonas 로고가 박힌 관광 버스만한 비행기가 활주로에 서 있었다. 이 작은 비행기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평평한 곳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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