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코이아이케 Coyhaique (1)
발마세다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부산히 움직였다. 일찍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숙소 주인 할머니께서 챙겨주신 아침 밥을 급히 먹었다. 주인 할아버지께서 불러주신 미니밴이 도착했고, 주인 분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미니밴에 탑승했다. 공항까지 가는 버스가 있지만, 버스를 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미니밴의 빈 자리를 보고 나니 이 시간에 푸에르토 몬트 공항으로 향하는 승객은 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1시간 정도 만에 도착하여 재빨리 수속을 마쳤다. 뜻밖에도 라운지까지 갖춰진 꽤 그럴싸한 공항이었다. 라운지 조식으로 모자란 배를 채우는 동안, 라운지 바깥으로 사람들의 발걸음 대신 하늘과 구름으로 가득찬 공항 대기실을 바라보았다.
비행기는 나를, 다시 파타고니아의 한 가운데, 중부 파타고니아로 인도했다. 칠레 파타고니아 지역에 속한 중부 파타고니아는 바릴로체와 칼라파테의 가운데 정도에 위치한 곳으로, 북쪽으로는 차이텐 Chaiten을 포함하고, 남쪽으로는 칠레 치코 Chile Chico와 오이긴스 O'Higgins까지 이어진 곳이다. 사실 위치로만 봤을땐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인 칼라파테나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중부 파타고니아를 거쳐 북부 파타고니아 지역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당연해보인다. 하지만, 중부 파타고니아 지역은 관광지로 발전한 다른 파타고니아 지역에 비해 아직 타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골 파타고니아’였고, 개발이 진행되지 않거나 이제 막 개발을 진행하면서 도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곳이 많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중부 파타고니아로 진입할 수 있는 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뿐더러, 진입 가능한 날짜나 요일, 교통편 또한 매우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 국경을 넘는 것이 이래저래 생각보다는 까다롭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중부 파타고니아를 진입하는 가장 일반적인 루트는 칠레 산티아고에서부터 안데스 산맥을 왼쪽에 두고 남쪽 방향으로 쭈욱 내려가는 것이다. 이때 꼭 거치게 되는 거점 도시가 푸에르토 몬트인데, 푸에르토 몬트에서도 중부 파타고니아로 진입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3~4가지 정도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내가 했던 것 처럼 비행기를 타고 발마세다 Balmaceda 공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표를 미리 구해둘 수 있다면 20달러 밖에 안되는 돈으로도 순식간에 코이아이케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남에서 북으로, 복잡한 산악 지형 위에 길쭉하게 자리 잡은 칠레는 지역과 지역 간의 이동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스카이 에어라인의 저렴한 가격이 때론 더욱 매력적이었다.
애증의 저가항공 스카이 에어라인. 못보던 사이에 로고가 바뀌었다.
(출처: http://www.flightstory.net/20180122/sky-airline-why-operating-in-other-latam-countries-seems-inevitable)
시간과 돈은 조금 더 필요하지만 중부 파타고니아의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이동하고 싶다면 육로와 해로를 추천한다. 일단 대략적으로 푸에르토몬트에서 동쪽 방향으로 갈건지 서쪽 방향으로 갈건지를 정해야 한다. 서쪽으로 향하게 된다면 차량을 이용해 카날 데 차카오 Canal de Chacao를 건너 진정한 해산물의 도시(?) 칠로에 섬으로 들어간 후, 배 편으로 푸에르토 아이센까지 이동하고, 다시 육로를 통해 코이아이케까지 이동할 수 있다. 아타카마부터 함께 여행했던 형들의 경험에 의하면, 푸에르토 아이센에서 코이아이케를 거쳐 칠레 치코, 오이긴스에 이르는 중부 파타고니아 거점 지역 간 버스 교통편은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다만 사람이 많은 동네는 아니다 보니 버스 운행이 그리 자주있진 않은 듯 하다.
동쪽으로 향할 결심을 했다면 칠레의 루타 7 Ruta 7, 카레테라 아우스트랄 Carretera Austral을 통해 중부 파타고니아로 이동하게 된다. 카레테라 아우스트랄은 론리 플래닛 Lonely Planet 칠레편에서 칠레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로 추천할 만큼 파타고니아 지역 안에서도 아름답기로 손 꼽히는 도로이다. 이동하는 동안 남미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인 푸말린 공원 Parque Pumalín, 코르코바도 화산 Volcán Corcovado으로 유명한 코르코바도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Corcovado, ‘매달려 있는 빙하’로 알려진 콜간테 빙하 Glaciar Colgante가 위치한 케우라트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Queulat, 쎄로 카스티요 Cerro Castillo로 대표되는 쎄로 카스티요 국립 보호지역 Reserva Nacional Cerro Castillo 등 중부 파타고니아의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100% 확신은 못하지만 대부분의 도시 간 버스 교통은 존재했던 듯. 렌트 카로 이동할 수도 있는데, 자전거나 오토바이 여행객이 많고, 길이 생각보다 꽤 험한 편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콜간테 빙하가 위치한 케우라트 국립공원
(출처: http://www.andeshandbook.org/senderismo/ruta/604/Mirador_ventisquero_Queulat)
칠레 파타고니아에 카레테라 아우스트랄이 있다면 안데스 산맥 건너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는 남미에서 가장 유명한 도로 가운데 하나인 루타 40 Ruta 40이 있다. 남아메리카 대륙 남단에 위치한 리오 가예고스 Rio Gallegos에서 부터 볼리비아 국경지역인 라 키아카 La Quiaca에 이르는 아르헨티나 서쪽 국경 지대를 따라 형성된 루타 40의 총 길이는 5000 km가 넘는다. 이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긴 도로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66번 국도 U.S. Route 66 (3940 km), 캐나다의 캐나다 횡단도로 Trans-Canada Highway (7821 km),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튜어트 고속도로 Stuart Highway (2834 km)와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긴 도로로 꼽힌다. 칠레 국경 근처에 위치한 엘 칼라파테, 바릴로체, 멘도사와 같은 주요 관광지와 20개의 국립공원, 18개의 대형 강을 통과하고, 해발 고도 5000 m 지역을 지나가는 이 도로는 파타고니아 육로 여행의 중심이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꼭 한 번은 루타 40을 따라 달리는 버스에 탑승하여 창문 바깥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파타고니아의 아름다움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루타 40 지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National_Route_40_(Argentina))
오버워치의 66번 국도 맵이 그냥 만들어진게 아니다.
난데없이 루타 40을 언급한 이유는,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며 중부 파타고니아를 진입하는 복잡한 방법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엘 찰텐이나 엘 칼라파테에서 버스를 타고 루타 40을 거쳐 페리토 모레노 Perito Moreno (빙하가 아닌 도시 이름이다)와 로스 안티구오스 Los Antiguos로 이동한 후, 이곳에서 국경을 넘어 칠레 지역인 칠레 치코 Chile Chico로 갈 수 있다. 얘길 들어보면 현지인들은 뭔가 더 제대로 된 방법으로 이곳 국경을 넘어갈 수 있나 본데 그 방법을 확실히 알아내기 어렵다면 그냥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것(!!)도 가능은 하다. 성수기일 땐, 국경 세관까지 걸어가다보면 돈을 받고 국경 세관까지 차를 태워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뭔가 불가능하진 않으나,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는 방법이다.
이렇게 로스 안티구오스와 칠레 치코 사이의 국경을 힘들게 건너는 사람들의 오른쪽에서 에메랄드 색 호수가 아름답게 빛나며 여행객들의 피로를 잊게 만든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순풍 Buenos Aires’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칠레에서는 그들의 독립 영웅 호세 미구엘 카레라 장군 General Jose Miguel Carrera의 이름을 붙인 이 호수는 인근의 산 라파엘 빙하 Glaciar San Rafael와 함께 칠레 중부 파타고니아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다. 칠레의 대표적인 빙하인 산 라파엘 빙하는 아르헨티나의 모레노 빙하보다 트레킹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모험가들에게 낮은 접근성과 인지도를 내세워, 모레노 빙하의 대체제로써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곳이다. 헤네랄 카레라 호수는 중심부의 독특한 대리석 지형으로 유명하다. 수 천년 동안 호수의 풍파로 호수 중심부에 대리석 동굴 Caverna de Mármol, 대리석 예배당 Capilla de Mármol, 대리석 성당 Catedral de Mármol - 이른마 마블 3종 세트 - 과 같은 형상이 생겨났고, 이는 파타고니아에서 지질학적으로 가장 특이한 곳 중 하나로 손꼽힌다.
라고 헤네랄 카레라, 혹은 라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푸른 빛깔
대리석 동굴 Caverna de Mármol
대리석 예배당 Capilla de Mármol
대리석 성당 Catedral de Mármol
산 라파엘 빙하로 들어가기 위한 투어 차량과, 마블 지형 관찰하기 위한 제트 보트나 카약은 호수 인근 도시 리오 트란킬로 Rio Tranquilo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카레테라 아우스트랄에 위치한 리오 트란킬로는 가까운 칠레 치코나 코이아이케에서 육로를 통해 접근 가능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교통 정보를 한국에서 구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무작정 코이아이케행 비행기 표를 끊어버렸다. 처음엔 발마세다 공항에서 빌린 렌트카로 리오 트란킬로를 가려했으나 현지에서 접한 정보를 통해 일단 코이아이케로 가면 어떤 식이든 리오 트란킬로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마세다 공항 인근에 위치하여 접근이 상대적으로 쉬운 코이아이케는 리오 트란킬로 근방의 가장 큰 도시이자 아이센 지역의 중심도시로써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리오 트란킬로로 향하는 교통편이 존재한다는 정보를 얻었던 탓이다.
리오 트란킬로 인근의 투어 사무실 모습
카레테라 아우스트랄을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진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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